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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할 타자와 진화론



양유성양유성 yooseong@gmail.com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 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9년 11월 3일


풀하우스 <<풀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009년은 전 세계인이 유명한 과학자 두 명에게 유독 관심을 보인 해다. 한 명은 갈릴레오로 올해는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직접 제작해 하늘을 관측한 지 400주년이다. 근대 과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갈릴레오는 이전까지 점성술 차원에서 맴돌던 천문학을 객관적 관찰과 예측의 학문으로 만든 업적을 이룬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천체 망원경이 있었으니 망원경 제작 400주년이 천문학계에 매우 중요한 해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다.

갈릴레오가 천문학의 차원을 망원경 개발로 한 단계 끌어 올렸다면 생물학 차원에서는 찰스 다윈이 비슷한 위치에 있다. 2009년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면서 생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준 그의 책 『종의 기원』을 쓴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또 종교계는 그토록 끊임없이 주장해온 창조론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진화론이 등장해 자연과학계와 함께 커다란 파장에 휩싸였다(갈릴레오나 다윈의 이론 모두 종교가 세워놓은 세계관의 기본 틀을 흔들어 놓은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2009년 현재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일은 누가 나서서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이론을 여러 책을 통해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니만큼 진화론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제공하는 책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나 이 책은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책 내용을 곧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선 진화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을 보고 나서 『종의 기원』을 차분히 읽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09년이 되어 『종의 기원』과 관련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번에 소개할 책은 올해 출간된 책은 아니지만 진화에 대해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바로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풀하우스』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풀하우스』를 비롯하여 진화생물학에 대해 대중서를 많이 저술했다. 대표적으로 한국어로도 번역된 『판다의 엄지』, 『인간에 대한 오해』, 『다윈 이후』,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해』 등이 있을 정도로 한국 독자들과도 친숙하다. 아쉽게도 그가 쓴 글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2002년 5월 20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굴드는 세상을 떠났지만 독자들은 그의 책을 통해 생물학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진화의 개념을 짚어갈 것이다. 진화에 대한 굴드의 시각을 가장 쉽고 재밌게 설명한 책이 바로 『풀하우스』[1] 다. 이제 책으로 들어가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책 표지를 보자. 책에 갖가지 새 이미지가 있다. 여러 가지 몸 색깔, 줄무늬, 부리 모양, 다리 색깔, 눈 색깔을 보여주는 새들이 그려져 있다. 영문 원서 표지에는 다양한 모양의 개구리(두꺼비일 수도 있음), 올챙이 등이 그려져 있다. 표지로 봐서는 진화론에 대해 직관적인 개념을 주는 책은 한국 번역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번역서에는 진화에 대한 개념을 짧지만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문구가 적혀 있다. 바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문장이다. 기억해 두고 여러 번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구다. 진화론을 생각할 때, 막연하게 ‘진화는 진보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라고 섣불리 가치 판단을 하는 오류를 이 문구 하나로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진화가 생물학 책에서 보는 생명 발생과 변화에만 관계되는 복잡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낸다. 책 목차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3부, ‘4할 타자의 딜레마’를 보면 진화는 복잡한 생명 발생과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4부인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는 생명과 역사라는 별개 범주를 동일하게 두고 진화를 통해 범할 수 있는 인간의 오해를 쉽게 설명한다(번역서는 원서 목차를 그대로 따랐다). 그럼 우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3부부터 한번 살펴보자.

한국도 2009년 가을 야구로 떠들썩하다. 누가 한국 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었든 그 승리는 수많은 선수, 감독들의 노력이 그 바탕이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통계다. 투수와 타자에 관한 무수히 많은 통계로 야구는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스포츠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더 과학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 통계 수치 중 익숙한 것이 바로 타율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횟수에 비해 안타를 얼마나 많이 쳤는지 계산한 것이다. 보통 몇 할 몇 푼 몇 리로 표시된다. 당연하게 타율이 높은 타자가 우수한 선수이고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

높으면 높을수록 야구에서는 좋은 타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야구 선수가 1년 동안 열심히 해도 4할 타율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2009년 몇몇 선수가 4할에 도전했지만 시즌이 다 끝난 시점에도 4할대 타자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야구 역사가 짧아서일까? 백인천 선수가 4할대를 넘긴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야구 역사가 100년이 넘은 미국에는 4할을 넘는 타율을 보이는 타자가 있을까? 있었다. “뉴욕 자이언츠 1루수 빌테리가 1930년 4할 6리를 기록”했다. 또한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4할 6리”였다. 미국 야구 역사상 단 7명의 선수만이 4할을 넘겼고 그것도 모두 1941년 이전에 세운 기록이었다. 그 이후엔 어느 누구도 4할대 타율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축복받은 기록이 이 책에서 언급하듯 단지 타자들에게 심각한 일들이 벌어져 발생했다고 판단할 것인가? “최고는 사라졌고 무엇인가 계속 나빠진 것인가?” 굴드는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 반대라고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다시 말해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현상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야구라는 시스템이 다양한 것으로 가득찬 시스템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음을 뜻한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할 타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다. 그 중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일견 인정하고 넘어가는 세 가지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투수의 투구 실력 향상이다. 2009년 현재 한국 프로 야구 투수들의 구질은 다양하다. 단순히 빠른 볼이나 커브만으로 타자를 상대하진 않는다. 이는 당연히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이미 검증되었다. 1940년대까지 미국에서도 투수들은 커브와 강속구에만 의존했다. 이러다 보니 선발 투수만 의미가 있었고 구원 투수나 마무리 투수 개념은 전무했다. 이후 “슬라이더[2], 스플리트 핑거드 패스트볼[3]”, 포크볼[4] 같은 구질이 다양하게 나오면서 타자가 투수의 공을 치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 이유는 수비 실력 향상이다. 그 실력 향상에는 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기술이 한몫 했다. 특히 그 효과를 확실히 본 부분이 바로 글러브다. 1950년대까지 올가미나 다를 바 없던 글러브로 수비를 했으니 타자들의 출루율이 높아진 것도 충분한 이유로 판단된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오늘날 글러브는 아예 공을 낚는 강력한 자석 올가미이다.”

마지막 이유로 언급된 것은 “구단의 관리 능력향상”이다. 감독과 코치들은 단순히 경기에서 ‘감(感)’에 맡겨 선수들을 운용하지 않고 작전회의와 컴퓨터를 통해 타자들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경기를 치뤘다. 이런 노력이 서로 엮여 4할 타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타격도 그냥 가만히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굴드에게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굴드가 의문을 품은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양대 리그 선수들의 타율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기록된 표(p. 144)에 따르면 평균 타율이 2할 6푼 정도에서 시작해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결국 타격 실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투수 실력이나 수비 실력 향상에 따라 떨어지지는 않았음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4할 타자가 사라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굴드는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을 처음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평균 타율 4할’을 다른 통계적인 수치와 다르게 계속 독자적인 항목으로 떼어내 생각했다는 점이다. 야구 선수들의 기록 모음이라는 것이 연속성을 보여주는 종 모양 통계 그래프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부분이라고 해서 이 곡선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정보는 아니다. ‘4할 타자’라는 항목에 너무 집중한 탓에 사람들은 그 통계를 잊고 있던 셈이었다.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경향은 매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연속체를 심리적으로 듣기 좋고, 그럴 듯한 숫자에서 뚝 자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변덕”에서 이 오류가 시작되었다고 굴드는 설명한다. 4할은 생물학에서 보면 ‘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변이가 축소됐다고 해서 시스템 자체가 악화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4할이라는 변이가 야구 시스템에서 없어진 것은 그가 보여준 통계에 따르면 타율의 변이가 평균값 근처에서 줄어들었다는 것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에 대한 통계학적 설명은 생략하겠다.

결론적으로 굴드가 언급한 내용은 4할 타자가 사라진 현상이 경기력 향상이라는 것이다. 4할 타자는 실력이 나아진 ‘진보’한 타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4할 타자가 사라졌다고 야구에서 타자의 ‘진보’가 없어졌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저 타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늘어 그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희박해졌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굴드는 변이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변이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며 시즌마다 누구나 그 변이를 기대하고 있다.

야구에서 몸을 풀었으니 이제 생물학으로 머리를 돌려 보자.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가 제목인 4부는 굴드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 그 자체다. 그 시작 부분은 헉슬리와 다윈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이상하다. 1959년 대화라고 적혀 있다. 혹시 번역자가 1859년을 잘못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는 저자의 잘못도 번역자의 잘못도 아니다. 실제 1882년에 사망한 찰스 다윈과 1895년에 사망한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손자들이 1959년 『종의 기원』 발표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벌인 토론이다. 이들도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나눈 ‘진화’에 관한 대화에 의심을 품기란 쉽지 않다.

굴드는 여기서 ‘진화’의 개념에 대한 오해를 언급한다. 그 오해란 “진보를 진화론의 핵심에 두는 것”이다. 응당 그렇게 보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박테리아였던 것에 비하면 현재 주변에 있는 나무나 동물, 특히 사람을 보면 그 진화가 진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런데 ‘진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다 보면 박테리아는 지구상에서 없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인류를 위협하는 박테리아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진화가 진보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다윈의 손자는 헉슬리의 손자에게 ‘진보’를 통해 이득을 얻은 기생충은 진화적으로 어떻게 고등한지를 묻는다.

이 문제의 해결법을 굴드는 앞서 4할 타자가 없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상정한다. 생명 체계에 있어 복잡성의 경향을 모두 4할 타자처럼 최상의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로 환원시켜 그쪽으로만 생각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굴드는 경고한다. 대신 그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복잡한 생물의 정교함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면 굴드는 진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원시 생명은 원시 바다와 대기라는 생명의 “자연발생적인 조건”에서 나타난 “최소한의 복잡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굴드는 이를 두고 “왼쪽 벽”이라는 용어를 쓴다.
  • 굴드는 현재 인간의 좁은 시야와 관심 때문에 생물을 동물과 식물로만 보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보지 말고 단세포/다세포 생물(좀 더 구체적인 분류로 원핵생물/진핵생물[5])로 파악하는 것이 옳으며 그 중 화석 기록상의 최초 생물 형태는 모두 원핵생물인 박테리아였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왔기 때문에 복잡성의 양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다시 진보가 진화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생명이 성공적으로 팽창해 나감에 따라 분포곡선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갈 수 밖에 없다.” 생명이 박테리아라는 왼쪽 벽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떤 생명체도 그 벽을 건너 뛰거나 중간에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결국 새로운 생명체는 오른쪽으로 그 복잡성을 늘려가며 그 영역을 늘려간다. 그 종에 대한 분포곡선이 오른쪽으로 늘어져 가면서 곡선의 오른쪽 기울기는 점차 작아진다. 그렇다고 박테리아는 그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박테리아 개체 수는 늘어나고 사라지지 않는다.
  • 이 분포곡선이 오른쪽으로 늘어짐에 따라(그 곡선의 가장 높은 부분은(p. 237의 그림 29) 여전히 박테리아가 차지한다) 그 오른쪽 꼬리 부분으로 분포 전체의 성질을 파악하는 것은 편파적이다. 이는 이미 4할 타자의 문제에서 다룬 부분이다.
  • 변이가 왼쪽 벽에서 시작되고 오른쪽으로 계속 증가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여서 오른쪽 꼬리 부분, 즉 4할 타자가 나타난 것은 우연히 발생한 결과일 뿐이다. 복잡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굴드의 주장이다.
  • 오른쪽 꼬리를 가지고 계속해서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을 굴드는 다시 경고한다.
  • 생물변이곡선에서 오른쪽 꼬리에만 집착하는 태도, 즉 “인간처럼 의식을 가진 생물이 지배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진화의 결과”라는 심리적 안정감은 진화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떼쓰기’에 불과하다고 굴드는 못박는다.

진화 분포곡선의 오른쪽 꼬리를 차지할 생명체가 어떤 것이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인류가 그 생명체의 자리를 차지한 것일 뿐이며 인간의 탄생으로 진화는 진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굴드의 표현을 빌자면 “인류는 그저 운좋게 당첨된 영광스러운 생명체일 뿐이다.” 충격적인 표현일 수 있겠지만 독자는 인류 이전에 항상 생명의 역사에는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내용과 함께 굴드는 박테리아가 지닌 생명력을 여러 가지 설명과 증거로 독자의 흥미를 이끌고 있다. 많은 설명이 덧붙여져 있으나 굴드는 로리 올리벤스타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간단하게 박테리아의 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생긴 이래, 다양한 생명으로 발전한 찬란한 행진을 조사해 온 진화생물학자들은 생물의 형태가 시간에 따라 복잡해지면서 지구를 다채롭게 만들어 온 것에 경탄해왔다. 더 큰 뇌, 더욱 효율적인 대사기관, 더욱 복잡한 사회체제, 이 모든 것이 진화에서 복잡성이 증가해 간다는 통념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포유류의 등뼈와 암모나이트 화석에서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진화적 추진력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4부 마지막 장에서는 인간 문화 전개와 자연 진화를 같이 두고 이를 ‘진화’나 ‘진보’라는 범주에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굴드는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다윈적 자연 진화와 문화적 변화 또는 전개는 차이가 분명하다. 인간과 인간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라는 것은 폭발적인 속도로 변화할 수 있고 어떤 방향성이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진화는 앞서 계속 언급되었듯이 분명한 한계와 방향성이 존재한다. 같은 범주에 두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15만년 전 인간의 뇌나 2009년 현재 인간의 뇌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문화라는 것은 단 1만년 동안의 기간에 이룩한 농업혁명에서 시작하여 우주에 우주선을 띄울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 굴드가 인류 문화에 대한 낙관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술 문명 발전이 인류 문화와 사회에 해가 된 경우, 핵무기에 의한 대량 학살을 일례로 들며 오히려 인류가 이룩한 것에 대한 경고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한 ‘사회진화론’[6]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굴드는 에필로그의 끝부분에서 풀하우스 모델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한다: “우리에게 변이와 다양성을 그 자체로서 존중하라.” 이렇게 다양한 변화의 영역에서 획일화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꼬집는다. 심지어 대형 슈퍼마켓으로 그 설자리를 잃어가는 구멍가게까지 언급하고 있다(2009년 한국 현실을 예측한 것일까?). 그는 인간은 자연이 끝까지 견지해온 변화와 다양성을 자연의 현실로 이해하고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책의 표지에 있는 “진화는 진보가 아닌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 책을 끝맺고 있다.

“...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 생물종들이 진화해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 갈 것이다.”


참고도서

  1. 찰스 다윈(지음), 이한중(옮김)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갈라파고스)
  2. 찰스 다윈(지음), 박영목(옮김) 『종의 기원』 (한길사)
  3. 스티븐 제이 굴드(지음), 홍동선 외(옮김)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4. 스티븐 제이 굴드(지음), 김동광(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5. 데이비드 쾀멘(지음), 이한음(옮김) 『친절한 다윈씨』 (승산)

[1] 이 책 제목인 풀 하우스(Full House)는 포커 게임 이름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프롤로그에서 그가 언급하는 시스템 변화에 대한 내용을 이 책과 함께 끝까지 한다면 응당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포커 게임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다.
[2] 속구와 커브의 중간 정도 되는 투구의 구질로 속력은 속구보다 느리지만 커브보다 빠르고 휘는 정도는 속구와 커브의 중간이다. 즉 단어의 의미대로 공이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미끄러지듯이 휘어져 나가는 구질이다. 위키백과 한국어판 참조
[3] 검지와 중지를 넓게 벌리고 야구공을 그 가운데 끼운 그립으로 직구의 투구 동작으로 던지는 공이다. 공을 손가락 뿌리까지 깊이 끼면 포크볼인데, 스플리터는 그보다는 약간 얕게 공을 끼운다 해서 반포크볼로 불리기도 한다. 위키백과 한국어판 참조
[4] 타자 앞에서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으로 포크로 음식물을 찍듯이, 공을 인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서 던지는 구질이다. 위키백과 한국어판 참조.
[5] 원핵생물은 핵, 염색체, 미토콘드리아 등 세포 내 작은 기관이 없는 세포이며 진핵생물은 다세포 생물이 세포 안에 갖는 다양한 기구를 모두 갖춘 생명체를 뜻한다.
[6]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널리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생물진화론에 기초한 사회 이론으로, 대표적인 사회진화론자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 그리고 월터 배젓, 미국의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등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약자가 줄어들고 그들의 문화는 영향력을 상실하는 데 반해, 강자는 강력해지고 약자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이 커진다고 보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 사회의 생활이란 생존 경쟁이라고 생각했고, 그 투쟁은 스펜서가 제창한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구 변동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우수한 경쟁자들이 살아 남고 인구의 질이 계속 향상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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