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책꽂이 |
전염병을 키우는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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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성 yooseong@gmail.com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 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9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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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돌베개 펴냄
2009년은 추기경 한 분과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세상을 떠난 해로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또 다른 기억해야 할 일을 꼽는다면 바로 H1N1이라고 명명된 신종 인플루엔자 발병이다. 전자의 일은 마음에 고통을 안겨주었으나 후자의 일은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9년 8월 이 신종 인플루엔자로 한국인 두 명이 사망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해외 여행객은 물론이거니와 내국인끼리 접촉도 조심해야 할 상황이 됐다. 2009년 현재 한국 정부 당국은 인구의 약 1/10이 복용할 수 있는 백신(‘타미플루’로 알려짐)을 준비했다[1] 고는 하나 WHO마저 몇 년 안에 사망자 1억 명을 낼 수 있다고 예고한 인플루엔자가 확산되는 일을 정부가 아무리 나선다 하더라도 이를 막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2009년 현재 한국인들은 신종 인플루엔자 사망자 수가 아직 적어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아직 실감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실감하지 못했다고 해서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되므로 이번 책 소개를 통해 독감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 질병을 단순히 의학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초기에는 ‘돼지독감’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가 ‘돼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2] 이처럼 이번 독감 이전에 인류를 계속해서 떨게 한 독감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소개할 책 제목이기도 한 ‘조류독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동물 사이에서 유행하는 독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감염된 동물들을 죽이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전염되어 다시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어 간다는 점이다.
그러면 인류는 어떠한 이유로 이런 전염을 경계해야 할까? 우선 이 책의 1장에 나온 인플루엔자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알아보자.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로 나눈다. 인플루엔자 B는 노약자들이 쉽게 걸리는 겨울독감을 일으킨다. 인플루엔자 C는 보통 감기의 원인이다. 인플루엔자 B와 C는 대유행과는 연관이 없다. 대유행병의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며 주목해야 할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A다.
인플루엔자 A는 고열과 마른 기침을 동반하며 여기에 인후염, 두통, 몸살, 구토, 심지어 결막염까지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인플루엔자 A는 보통 조류에서 시작되기는 하나 다른 조류나 포유류에게 전염되며 특히 인간에게 전염되었을 때 그 개체 변이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3] 보통 인간에게 전염되고 나면 인간을 숙주로 삼는 인플루엔자와 포유류가 가진 인플루엔자와 유전자를 교환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변형된 인플루엔자 변이보다 이렇게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유전자 교환에 따른 변이형 인플루엔자가 대유행병의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이다.
인플루엔자 A는 어떻게 자유롭게 그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일까? 그 변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조금 어려운 용어가 나올 수 있으니 관심 없는 독자는 이 부분을 건너 뛰어도 좋다). 인플루엔자는 기본적으로 “작은 대못”에 수많은 버섯 형태 융기들이 붙어있는 구조다(아래 이미지 참조).

이 “대못은 분자 사슬 3개로 이루어진 헤마글루티닌 - 통상 HA로 명명된다 - 이며 그 주위에 붙어 있는 버섯 모양의 물질은 NA라고 불리는 뉴라미니다아제라는 강력한 효소이다.” 이 HA는 인플루엔자가 숙주로 삼을 수 있는 외부 세포에 진입할 수 있는 “분자 열쇠”라고 보면 된다. 이 열쇠는 특정한 숙주에만 통용되므로 돼지를 숙주로 하는 인플루엔자는 거기에 맞는 HA를 갖고,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만 맞는 열쇠를 갖는다.
그런데 어떻게 조류나 돼지, 인간 사이에 교차 전이가 발생할까? HA는 특정한 아민산에 대해서만 강한 친화력을 보이므로 숙주와 한번 결합한 것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그 친화력을 무력화하는 NA가 있기에 바로 조류에서 돼지로, 다시 인간으로 전이가 자유롭게 발생한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A는 HA와 NA의 조합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인플루엔자 A는 그 종류를 지칭할 때 HxNy[4] 라는 이름으로 표기한다.
2005~2007년 한국에서 발생했던 조류독감은 H5N1 바이러스였으며 2009년 8월 현재 한국을 위협하는 녀석은 H1N1으로 명명된다. 그렇다면 NA가 하는 역할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면 대유행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억제제가 다행히 1993년과 1997년에 개발됐다. 1993년에 개발된 것은 “자나미비르”이며 1997년에 개발된 것이 “오셀타미비르(‘타미플루’로 더 잘 알려짐)”다. 과학계조차도 이 억제제 개발로 인플루엔자로 인한 대유행병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개발된 백신으로 인플루엔자에 의한 대유행병을 막는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이 인류 모두에게 ‘골고루’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현재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타미플루’가 약 500만 정이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05년 <<조류독감>>이 처음 쓰였을 당시, 이 책 지은이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도 “단 1개 주의 필요량에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타미플루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같은 제1세계도 이렇게 충분한 백신 마련이 어려워 골머리를 앓는데 제3세계는 대유행병을 막는 일에 손을 놓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실제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1억 명에 가까운 인구 집단에서 전염병이 발생한 유력한 결정 요인으로 분석되는 것이 “빈곤, 영양 실조, 만성 질병과 동시 감염”이었다. 바로 현재 제3세계 저개발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공중 보건 환경이 바로 전염병을 규정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1918년 당시 H1N1으로 분류된 독감으로 가장 많이 죽은 사람은 “노동 계급과 블루 칼라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바이러스의 대창궐은 단순히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떠나 국제사회적인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은 세계화가 이러한 대유행병이 널리 퍼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바로 제3세계의 도시화가 그 환경 제공의 시발점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제3세계는 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그 빈곤의 짐이 “농촌에서 대도시의 슬럼화”로 옮겨가고 있다. 이 지역 빈곤층은 농촌이나 산에서 살면서 자급자족 형태의 삶을 누려 오다가 제1세계 다국적 기업의 공세로 도시로 쫓겨나면서 도시 슬럼화가 가중되었다. 여기에 인구 집중이 동반되면서 질병의 대유행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5] 산림과 같은 자연 자원은 무차별적으로 개발됐고 무차별적 개발은 그 국가의 경제를 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그 자연에서 서식해왔던 동물 자원도 그 다양성을 위협할 정도로 줄었다.
문제는 단순히 동물 자원 감소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야생 동물의 접촉 기회가 늘기도 했다. 법의학의 아버지였던 로카르가 언급한 법칙인 “두 개의 접촉하는 물체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격리된 채로 있었던 미생물 보유 숙주들이 인간 사회와 연결된 셈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넘어와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6]
미개척지의 무차별적 개발에서 눈을 돌려 급격한 도시화를 살펴보자. 사람들이 몰리면서 기존 재래 시장은 가금류와 돼지, 야생 조류의 교환 시장이 되어 버렸고 여기에 고밀도 인구 집단이 가세했다. 실제 H5N1 바이러스로 고생했던 중국 광동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홍콩에서는 마음을 졸이며 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주시할 정도였다. 이 지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공장형 닭장이 돼지 우리 바로 위에 있어서 돼지 여물통에 닭의 배설물이 그대로 떨어지기도” 하는 곳이었다. 도시 영역 확장으로 농장 면적이 줄면서 사람이 사는 기숙사나 공장이 농장과 함께 같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게 되었다. 이미 이 지역은 대유행병 창궐을 예견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여기에 중국 남부 지역은 외국과 교역이 많은 지역이어서 조류독감이 한번 유행하면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될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3세계의 급격한 도시화와 전세계적 자본주의 경제는 질병마저 전지구적 확산으로 안내하고 있다. 질병 자체가 자연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문제일지 모르나 그 확산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욕망은 인플루엔자 A의 변이와 확산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그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 앞장서서 대유행병 확산을 막는 데 나서야 하는 제1세계 국가들은 이 백신 개발과 판매가 회사나 자국의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백신과 항생제 생산 라인 관리에 모두 소홀히 하고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했다.
원래 제약 회사는 정부나 병원에 경쟁적인 로비를 통해 자사의 신약을 승인 받고 홍보함으로써 비싼 가격에 약품을 팔아 폭리를 취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백신 개발에는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실질적인 치료제나 예방 의약품들은 이익이 크지 않다. 이와 달리 당뇨병, 고혈압, 천식 등 만성 질병에 필요한 약품이나 비아그라 같은 제품들은 팔았을 때 남는 이익이 많아 해당 분야 신약 개발에 더 집중한다. 실제로 제약업계에서 잘 알려진 Pfizer가 “콜레스테롤 저하제 단 한 제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백신 제품의 수입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거대 제약사들은 “연구보다는 마케팅 활동에, 신제품보다는 기존 제품을 이름만 바꾼 것에, 예방보다는 치료에 투자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독감 철이 자주 오지도 않는데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과 생산 라인 관리에 소홀한 것은 제약업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렇다 보니 자국민들에게도 투여할 인플루엔자 백신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고 제3세계 국가처럼 제1세계 국가들의 ‘타미플루’ 생산만을 기다리는 나라는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생각해보면 인플루엔자가 생성되고 변이를 거듭하는 것은 자연 현상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이런 변화의 틀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그 어려움 속에서 대유행병이 널리 확산되어 많은 인명 피해를 입혔다. 자연과학적으로 보면 이건 순전히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문제라고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여러 사태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자연이 인플루엔자라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체계를 만들어냈으나 이를 조절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킨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그 재앙은 슬럼의 빈곤, 신자유주의 정책이 맺은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서 더욱 커졌다. 특히 이 책에서는 ‘조류독감’에 집중하면서 이 조류독감의 급속한 확산은 1980~90년대의 “축산업 혁명”과 중국 남부의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중국 무역이 세계 무역의 중심이 되면서 이 지역 물자와 인구 이동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발생하기 쉬운 조류독감이 이 지역에서 발병하기라도 하면 그 전파 속도와 치사율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정도에 이를 것이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H1N1형의 인플루엔자가 한국을 포함하여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놀랍게도 이번 발병은 1946년 이래로 거의 11년의 간격을 두고 반복되어온 발병 순서를 따르고 있다. 1946, 1957, 1968, 1979, 1990, 2001, 2010년이다. 2010년은 내년이다. 이번 H1N1 인플루엔자는 2009년에 그 사망자 수가 늘어났으나 북반구가 추워지는 올해 말과 내년이 더 고비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또 11년 주기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타미플루라는 약을 제외하고선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므로 11년 주기설이 있고 다음 번 인플루엔자 확산 시기를 예측한다 하더라도 꾸준한 ‘타미플루’ 생산과 전세계적 보급 노력이 없으면 1918년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은 자국민들이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 마이크 데이비스(지음), 김정아(옮김),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돌베개)
- 지나 콜라타(지음), 안정희(옮김), <<독감>>, (사이언스북스)
- 스티븐 제이굴드(지음), 이명희(옮김), <<풀하우스>> (사이언스북스)
- 황상익(지음),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한울림)
주
[1]“현재 당국이 전체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531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지만 ... ”
[2] “1979년 미국의 뉴저지 지역에서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을 보건 당국이 역학 조사한 결과 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바이러스는 돼지 인플루엔자이며 유전적으로 보아 1920년부터 1957년 H2N2로 대체될 때까지 유행했던 독성이 약한 인간 유전자형보다는 원래의 범유행성 변종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H1N1의 한 종류라고 보고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자면, 1918년의 그 엄청난 살인자가 부활한 셈이었다.” 여기서 언급된 것처럼 H1N1이 돼지 바이러스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2009년 현재 독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인플루엔자 A 중에서 특히 조류독감의 경우 크게 고병원성, 저병원성 등으로 나뉜다. 고병원성은 조류 사이에서 닭 여덟 마리 중에서 여섯 마리 이상이 조류독감에 걸려 폐사했을 경우와 다른 조류에게 전염되었을 때 그 전염된 조류의 폐사율이 50%를 넘으면서 세포 변성이 오는 경우, 기존 고병원성 조류독감과 유전자 배열이 비슷할 때를 고병원성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저병원성은 폐사율이 낮고 전염 가능성이 낮은 조류독감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다. -- 국제무역사무국(OIE)에서 규정한 내용에서 발췌
[4]x는 1에서 16까지 종류가 있으며, y는 아홉 종류가 현재까지 알려져 있고 x와 y의 조합으로 총 144가지 종류로 지칭이 가능하다.
[5]이 책 지은이 마이크 데이비스의 또 다른 책인 <<슬럼, 지구를 뒤덮다>>에서 그 내용이 자세하게 다뤄진다.
[6]대표적인 예가 HIV 바이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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