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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소프트웨어 시대의 도래



이창신이창신 iasandcb@gmail.com, http://iasandcb.pe.kr

티맥스소프트 JEUS팀, 엔씨소프트 오픈마루 스튜디오를 거쳐 현재 인디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2월 10일


먼저, 2009년의 첫 공개 글을 디벨로퍼웍스 칼럼으로 쓰는 것이 무척 기쁘면서도 사실 부담이다. 주제는 자유라고 했지만, 역시 내가 관심 있는 것을 위주로 쓰게 될 터, 내 주변 얘기부터 시작하며 그 부담을 떨쳐보려 한다.

며칠 전 온라인 마인드맵 소프트웨어 ‘만득이네(http://www.mandki.com)’를 만든 민진우 님을 만나 최근 출간한 이클립스 책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에 새로 자리 잡은 회사가 내가 지난해 상반기 스프링노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를 할 때 주도적인 개발을 했던 한 학생이 취업한 곳임을 우연히 알았다. 두 분 다 모바일 개발 이력이 있었는데, 이번에 함께 일할 회사는 모바일 UI 전문 회사였다. 어떻게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에 모인 두 분을 다음주쯤 만나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든다(들은 이야기는 아마 다음 칼럼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인터페이스는 소통이다. 내가 요새 번역에 골몰하는 SOA(Service Oriented Architecture) 관련 글(수필집의 일부다)에도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가 어떻게 더 잘 소통할까가 문제의 핵심이고, 특히 변화무쌍한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 부합하는 인터페이스는 비즈니스 기능과 가치 전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와 달리,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외양(appearance)이라는 요소가 있다.

내가 맥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04년 겨울이니까 벌써 4년이 넘어간다. 물론 윈도를 안 쓸 수는 없지만, 주 PC로 맥 라이프가 이제 5년차인 셈이다. 가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냐, 비싸지 않냐, 왜 맥을 쓰냐고 물어보는데,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답하면,

“예뻐서”

이다. 맥을 처음 산 계기도 그거였다. 지금은 야후 위젯으로 유명한 컨패뷸레이터(konfabulator)라는 위젯 플랫폼이 있었는데, 이 플랫폼 위에서 돌아가는 날씨 위젯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단순한 문장 묘사-맑음, 흐림, 비옴-대신 다양한 이미지로 형상화-맑음은 반짝이는 태양, 흐림은 먹구름, 비옴은 비가 뚝뚝-한 날씨 표시는 당시로서는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 위젯 플랫폼이 맥만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것은, 아예 Mac OS X 10.4(코드명 타이거)에서 아예 OS의 기능으로 비슷한 기능-현재의 대시보드 위젯-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나는 예쁜 UI의 꽃밭에서 신선놀음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윈도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인텔 맥에서도 여전히 불편하다. 한때는 환율 덕분에 노트북 판매 순위 1위도 찍었지만 지금은 그 환율 덕분에 엄청나게 비싸다. 그럼에도 맥에 돈과 시간을 부어 넣는 까닭은, 거기에 내가 원하는 가치가 있고, 그 정수에 UI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문맥을 아이폰으로 틀어보자. 스마트폰의 역사는 아이폰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스마트폰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어째서 아이폰이 마치 스마트폰의 총아인양 떠드는 걸까? 몇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쉽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UI다. Mac OS X과 윈도, 그리고 아이폰과 윈도 모바일의 비교에서 극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간결함’과 ‘반응성’에서 차이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은 일반 휴대전화에 비해 고성능이어서, 뭔가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소탐대실일까, 이것저것 자잘하게 넣은 결과 사용하기 편하지도 않고, 빠르게 반응하지도 않는 물건이 나왔고, 사용상의 만족도는 스멀스멀 가라앉는 악순환이 오늘날 스마트폰 시장의 개화 시기를 미루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폰에서 그 대안을 본 것이다.

달리 보면, 간결함은 궁극의 탐욕이 낳은 것인지도 모른다. 홈 스크린(휴대전화를 켰을 때의 기본 화면)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날씨도, 시계도, 이메일 상황도, 스케줄도, 게다가 사용자가 심은 위젯까지, 화면이 좁은 것도 아니니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구성은 OS가 알아서 해주니까 당연히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좋은 것들을 죄다 포기하고 홈 스크린을 달랑 애플리케이션 실행의 끈이 되는 아이콘들로만 나열시키다니,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고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작은 것을 넣고 싶은 욕심이 커지면 큰 것을 넣고 싶어진다. 작은 것이 낱낱의 기능이라면 큰 것은 그 기능을 품는 그릇, 즉 플랫폼이다. 큰 욕심을 채우려면 대가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은 새로 가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법이다. 소탐대실이 아닌 대탐소실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말부터 아이폰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를 할 때면, 마무리랍시고 사업 아이디어를 청중에게 하나 던지는 버릇이 생겼다. 핵빙하기라는 비유가 모자라지 않는 작금의 경제 상황에서도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는 IT의 애플, 자동차의 아우디, 패션의 에르메스 등을 보면, 명품 연기니 명품 드라마니 하는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떠올린다. 20세기를 정복하고 21세기를 짓누르는 양극화가 어디까지 갈까 모르겠지만, 이제 소프트웨어에도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지 않을까?

‘명품’이라고까지 하지는 않지만, 맥에는 유려한 UI로 호평을 받는 상용 애플리케이션들이 상당히 있다. 최근에 알게 된 ‘Things’ 같은 경우, 간단히 말해 할 일(To do)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사용자들이 매료되는 부분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기능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인상주의적 외양이다.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아이콘의 크기강약부터, 분명한 강조가 입혀진 입력 항목들, 그리고 유용한 연동을 위한 고리까지, 미화 49.95달러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 짝을 이루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도 9.95달러라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치고는 꽤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수많은 GTD(Getting Things Done)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렇다. 간단한 달력 프로그램이라도 명품이 될 수 있다. 물건을 담는 기능이라면 공짜에 (가까운) 비닐 봉지도 되지만 수백, 수천만 원짜리 가방을 사는 까닭은, 기능•디자인•브랜드의 결합으로 그 가방을 지닌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 굳이 허영(vanity)이라는 다소 거부감이 드는 낱말을 쓰지 않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결국 존재의 확인으로 귀결된다. 내가 아닌 것으로 나를 드러내는 고도의 문명이 그 동안 유형의 물질에만 갇혀있었다면, 21세기는 무형이라고는 해도 실은 외양이 엄연히 존재하는 GUI 애플리케이션으로 해방되는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듯 해도 상상해보면 재미있다.

명품 소프트웨어 브랜드 X가 있다. 2010년 봄 신상품으로 2010년 봄 유행색인 핑크 톤의 달력 프로그램이 499달러, 거기에 전세계 1000개 한정으로 판매된다.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자랑스럽게 내비치는 X 캘린더로 간접 홍보하며, 카페에서 자신이 산 X 캘린더를 자랑하는 풍경도 벌어진다.

여기에 내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 있다면, 세계적인 명품 소프트웨어 브랜드가 한국에서 나와줬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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