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책꽂이 |
푹스의 눈에 비친 서양 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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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성 yooseong@debian.org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 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9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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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1~4권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까치, 2001년
지난번에 소개한 책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조선 사람들이 숨기고자 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욕망에 대한 풍속을, 신윤복의 그림 몇 점을 통해 알아보았다.
신윤복의 그림이 관심을 받았던 것은 조선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국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특수한 역사적 국면이란 조선이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가로 500년 이상 이어져 왔다는 상황이다. 유교라는 무거운 사회 이념으로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한쪽에서는 인의예지를 외쳤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욕망을 숨기기 힘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서양의 풍속사도 이어져 내려왔다. 서양 사회에서 성에 대한 욕망이 조선 사회처럼 억눌려 있지 않았다고 해도 그 성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인 맥락과 연결짓지 않을 수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각도로 성애가 표출되었다. 이러한 성에 대한 욕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책이 바로 에두아르트 푹스가 네 권에 걸쳐 펴낸 <<풍속의 역사>>다.
이 <<풍속의 역사>>는 크게 풍속의 역사를 개괄하는 네 권 전체에 나타나 있는 성 풍속을 요약하고 이론적으로 풀어낸, ‘풍속과 사회’라는 부제가 붙은 1권, 인간의 육체가 신을 대신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풍속사를 다루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압도했던 관능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설명한, ‘르네상스’가 부제인 2권, 정치 권력과 미의 이해 관계가 상호 부응하여 형성된 이상적인 미에 대한 관념과 그 표현에 대해 다룬, 부제가 ‘색의 시대’인 제3권,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삶에 가장 깊게 파고든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3권에 언급된 절대주의적 관념을 밀어내고 자본주의의 주인공 부르주아가 생각했던 에로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4권인, ‘부르주아의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크게 근대 부르주아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눠 살펴보고 특히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는 근대 이후 부르주아의 삶을 집중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자.
근대 부르주아 이전의 성 풍속
<<풍속의 역사>>에 등장하는 남자가 여자에 대해 느끼는 성애는 귀족과 평민에 따라 달랐다. 이러한 성애는 자신이 속한 집안 여자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서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현대 일부 성인 남자의 심리가 자신의 여자 친구나 아내, 누이가 짧은 치마를 입고 외출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밖의 다른 여자들이 보여주는 노출에는 관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어, 1500년대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귀족의 아내가 혹시 다른 남자와 정분을 통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정조대까지 만들어 놓고 귀족 자신은 그 열쇠를 가지고 다니며 항상 자신의 아내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귀족 남자들은 항상 외간 여자와 어찌하면 한번 정분이 나볼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편 평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면 자신의 아내나 누이를 밖으로 내몰아 돈많은 남자를 유혹하거나 몸을 팔아 집안의 경제 사정을 나아지게 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벌어온 돈을 고스란히 저축해 자기 아내나 누이를 다시는 밖에 내보내지 않았으면 좋았겠으나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나 오빠 들은 여자들을 계속해서 밖으로 내몰아 돈벌이에 이용했다. 이렇게 벌어온 돈을 그 남편이나 오빠는 다른 여자들과 술을 마시며 잠자리를 하면서 탕진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이렇게 방탕해 보이고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하던 시대에 여성들은 그저 남자들의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만 존재했을까? 귀족 아내의 경우 정조대까지 사용하도록 강요받으며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산 여인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책을 보면 이들도 남편 못지않게 성에 대해 강한 욕망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사회 분위기는 여성도 성애를 적극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런 풍속은 결국 성애를 해결하려는 공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특히 참을 수 없는 성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남자들의 야성을 쉽게 방출하는 곳이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바로 사창가였다. 당시 사창가는 음산한 뒷골목에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고 귀족들이 모인 사교 클럽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이곳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남자를 끌어들였다. 그냥 하룻밤 유희를 즐기려고 들어간 남자들은 자기 부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창녀들의 요염함에 점차 빠져들고 점점 더 예쁘고 더 강한 유혹을 하는 창녀를 찾아다녔다. 귀족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생활을 거듭하다 보면 몸도 재산도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국가는 사창가에 제동을 걸고 창녀와 일반 여자를 구별하는 옷차림을 알리는 규범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규범을 통해 창녀들을 관리하려 해도 창녀들은 이런 규제를 피해 남자를 끌어들이기에 바빴다. 여기에 일반 여자들은 자신의 복장이 혹시나 창녀의 복장으로 의심받을까봐 아예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일까지 생겼다. 유럽은 점점 어둠의 세계로 이들을 몰아갔다.
그렇다면 이렇게 본격적으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향락 생활을 즐기던 여성들은 국가의 규제를 어떤 형태로 피해갔을까? <<풍속의 역사>> 2권 끝부분에는 로마를 멸망시켰다는 목욕탕과 온천 문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사창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사람들은 다른 형태의 향락을 찾아다녔고 관리의 눈을 속여 성을 팔아 향락을 즐기기에 목욕탕과 온천이 제격이었다. 남자들은 목욕탕에서 당시 허용되던 혼탕을 하며 여자들에게 수작을 걸었고 그들은 거칠 것 없이 도덕적 타락을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가 다시 규제를 하고 나섰다. 즉각적인 대안으로 국가는 남녀 혼탕을 금지했다. 이런 규제가 계속 나온다고 사람들이 한번 젖은 타성을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이젠 온천으로 그 장소만 바뀌었다. 심지어 온천에는 "임신이 안 되는 여성은 온천에 가면 된다"라는 문구까지 있었다.
계속되는 방탕한 생활로 인한 도덕적 타락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도 같이 커진다. 기독교 교리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인도하는 지침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방탕한 생활 뒤에는 지옥이 기다린다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절제된 삶을 살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교리나 지옥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잠시 반성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향락 생활에 빠져든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기 몸과 마음과 경제를 좀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향락적인 중세 귀족 사회의 몰락을 가져온 근대에 새롭게 등장하여 시대를 이끌어갔던 부르주아들의 성 풍속은 어떠했을까?
부르주아 시대의 성 풍속도와 연애, 결혼, 그리고 공연 문화
부르주아 시대가 되면서 개인의 사회적 가치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며 이 가치는 결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대에는 결혼을 남녀의 순수한 사랑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구혼 광고를 내는 돈 많은 남자를 남편이나 사위로 맞으려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결국 자본주의의 ‘노골적인‘ 본 모습이었다.
결혼을 한 뒤 여성들은 결혼과는 다른 문제에 맞닥뜨리는데 바로 직장에서 기혼 여성의 위치였다. 사업주는 기혼 여성의 노동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논리인 ‘이윤 추구’에 이 한계는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기혼 여성은 노동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 이러다 보니 결혼하기 전 성 관계가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의 상황이었다. 농촌에서는 남자의 노동력이 그 해 수확의 핵심이었고 이런 노동력을 꾸준히 유지하려고 여성들은 남자에게 성적 만족감을 만족시켜 주며 살았다. 이런 혼전(외) 성 관계는 암묵적 동의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으며 이런 일을 겪지 않은 남녀가 있다면 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 정도면 암묵적 동의를 넘어, 사회적으로 ‘선동’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결혼한 부르주아들은 이런 혼외 성 관계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혼외(전) 성 관계와 함께 자유 연애는 또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으며 이 자유 연애는 부르주아들의 문란한 성 관계를 감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자에게 자유 연애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남자들은 연애할 때만 그 여자를 중하게 여겼을 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여자를 쉽게 버리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여자들은 자살이나 영아 살해를 하거나 매춘부로 전락한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을 1차적으로 막기 위해 실시되었던 성 교육은 부르주아 시대 이전부터 시작하여 상당히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했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나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 경로에는 ‘사촌’이라는 일종의 상징적인 인물에게서 2차적인 성적 지식을 배웠으며, 남자의 경우 여기에 추가하여 매춘부를 통해 성을 좀 더 노골적으로 즐겼으며 이는 결혼 뒤에도 자기 부인에게까지 전달되어 성병을 옮기거나 부부끼리 아주 음탕한 행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기에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려고 아이 낳기를 최대한 미루거나 자식을 낳아도 되도록 적게 나으려 했다. 그 아이들이 누릴 경제적 혜택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되어 원하지 않은 아이가 생겼을 때, 낙태가 점차 흔한 일로 바뀌었으나 이러한 중절은 부르주아 계층에 한정되었다.
사생아가 생기는 또 한 가지 원인으로 외도가 있었다. 외도도 돈과 연결되어 있어서 씀씀이가 많은 여성은 자신의 물욕과 육욕을 충족시키려고 자신의 몸을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팔았으며 처음엔 이런 형태의 매춘이 암암리에 행해지다 나중엔 메종드랑데뷰라는 매춘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 또한 자리잡았다. 꼭 이런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배우자에게 성적으로 불만이 많이 쌓이거나 배우자와 잠자리 횟수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외도에 눈을 돌리게 마련이었고 결국 이혼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18~19세기 창녀와 포주, 경찰, 고급 창녀의 모습은 현재 전세계의 이와 관련된 상황과 상당히 흡사했다. 시대가 달라져 옷이나 머리 모양 등이 바뀌었을지언정 창녀와 포주 사이의 노예-주인 같은 계약과 상류층에서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한 여자만을 놀이의 상대로 여기는 모습, 일부 부패한 경찰들이 단지 포주의 경호원 같은 일만 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연극과 영화, 신문 같은 모든 문화 활동은 에로티시즘과 무관하지 않았으며 그 중심에는 여자가 있었다. 신문에 여자가 나체를 보여주며 공공연하게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 광고와 구애 광고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무대 공연의 경우 캉캉처럼 여성의 허리 아래 부분을 과감히 보여주는 공연이 널리 퍼졌으며, 이러한 공연에 남자들은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열광하였다.
부르주아 시대의 복장과 유행
전체적인 구도에서 이 책에 등장한 남녀의 복장을 통해 살펴봤을 때, 부르주아 시대의 복장은 이전 앙시앵레짐 시대 귀족의 복장과 정반대 형태로 나타난다. 앙시앵레짐 시대 귀족들의 생활은 오직 놀고 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빈둥대는 생활”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는 옷차림이었다. 시대가 정체되어 있었으므로 부르주아 시대처럼 빠르고 변화무쌍한 유행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는 주로 경제적인 활동을 하였으므로 항상 동선이 살아있는 옷을 선호했고 그것은 이전 시대 귀족들의 주무대였던 살롱이나 극장의 특별석이 아닌 공장과 사무실에서 입기 편한 옷이었다. 이처럼 부르주아의 복장은 단순하며 간소화되었고 “무미건조한 색채”가 나온다.
이러한 부르주아 시대 복장의 특징이 그 간소함과 단순함에 하나의 의미를 둔다면 이에 가해지는 조그맣거나 큰 변화들, 즉 ‘유행성’은 부르주아 시대 복장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런 유행은 획일적인 복장의 특징 안에서 부르주아가 자신들과 다른 계층, 특히 하층민들과 차이를 주고 싶어했으며 “더욱 멋있고 고상하고 품위있게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푹스는 이 책에서 예링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현대적 의미에서 유행은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갖는다. ... 이 유행은 신분적 허영심의 술래잡기이며 끊임없이 반복된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런 유행은 단순히 심리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 시대의 생산 양식은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게 만든다’였고 이를 위해 공장주인 부르주아들에겐 기계제가 반드시 필요했다. 옷 또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도록 재료, 색체, 배합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옷을 만들어내었다. 오늘 상류층에서 유행했던 것이 내일은 대중의 유행이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가 확실히 자리잡으면서 유행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되었다.
개인의 행태를 넘어선 사회적 행동
이처럼 푹스는 순수하게 사회적이거나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요인까지도 유행을 만드는 주 요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순수하게 자신이 사회적으로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내가 다른 계층보다 우월하다는 심리적인 동기, 그리고 부르주아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이 처음 시작한 복장이나 장신구들이 대중의 유행을 만들어 내었고 유행하는 옷이나 장신구를 사려고 수요가 생겨나며 부르주아는 다시 이런 제품들을 생산하거나 팔아 자신의 부를 늘린다. 푹스는 성 풍속의 역사를 주 내용으로 다루지만 우리의 말초적인 부분만 자극하는 내용을 넘어 유행의 의미를 사회 관계에서 여러 가지 각도로 본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총 네 권의 책을 통해 에두아르두 푹스는 인간 사회의 진보와 그 사회 도덕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도덕 수준은 나아지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맴돌거나 더욱 타락하는 것처럼 보여왔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시대이건 ‘도덕성의 수위가 절대적인 양적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인 양적 문제’이기 때문에 도덕적 타락을 판단하기란 힘든 문제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전 시대의 잘못을 계속 고쳐나가며 끊임없는 도덕성을 추구하고 그 도덕성 위에서 정치, 경제, 사회가 발전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오늘날의 독자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네 권이라는 다소 많은 양의 책이지만 푹스의 책을 통해 독자들이 서양의 성 풍속사의 내면에 담긴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참고문헌
- 피터 게이(지음), 고유경(옮김) <<부르주아 전>> (서해문집, 2005년)
- 게오르그 짐멜(지음), 김덕영, 윤미애(옮김)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물결, 2005년)
- 필립 아리에스(지음), 문지영(옮김) <<아동의 탄생>> (새물결, 2003년)
- 데이비드 하비(지음), 김병화(옮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2005년)
- 칼 쇼르스케(지음), 김병화(옮김) <<세기말 비엔나>> (생각의 나무,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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