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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시대는 다시 오는가?

새로운 기회를 바라보며…


김도형김도형 dynaxis@alticast.com

양방향 TV 솔루션 개발을 해 왔고 현재는 DMB를 위한 자바 규격 표준화와 제품 개발을 맡고 있다. JSR 242, JSR 272 등 방송 관련 JSR에 전문가로 참여했으며, 자바 외에 프로그래밍 언어 전반, XML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8년 10월 14일


PC로 대표되는 대중화된 컴퓨터 기술에 있어서 우리는 길게는 윈도 3.0이 발매된 1990년 이후 20년, 짧게는 2001년 윈도 XP가 나온 후 오늘날까지 폭발적인 양적, 질적 성장을 만끽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를 내놓으면서 PC 소프트웨어의 로드맵뿐 아니라 하드웨어의 로드맵까지 거머쥔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통상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가 나타나면 혁신은 물 건너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별히 정해진 수명이 없는 소프트웨어이기에 끊임 없이 이전 것을 구식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지원한 탓에 오늘날의 랠리(rally)는 계속 되고 있다.



눈부신 혁신, 상실된 다양성

이 랠리에 동참한 가장 큰 수혜자이자 동반자는 당연하지만 x86의 인텔이다. 윈도 ME까지 이어지는 윈도의 x86 의존성은 x86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했고 더 나아가 웹을 통한 폭발적인 서버 수요 증가와 GNU/리눅스 등에 힘입어 이제 진보의 랠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힐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창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출시가 새로운 프로세서의 수요를 견인하고 동시에 인텔의 로드맵은 윈도에 넣을 새로운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여담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x86으로 대표되는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의 종말과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의 시대를 도래를 대비해 윈도 NT를 만들기 시작했고, 인텔이 x86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이엔드에서는 아이테니엄(Itanium)에 매진하고, 임베디드 쪽에서는 암(ARM) 기반인 스트롱암(StrongARM)을 DEC에서 인수해 생산했고 XScale을 개발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기술적으로 이상적인 구조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x86은 질기고 질겨 오늘날 인텔의 중심은 여전히 x86이다. 아이테니엄보다는 여전히 x86 기반 제온의 비중이 크며, 임베디드 시장에서도 결국 XScale을 팔아 버리고 x86 계열 아톰 프로세서를 밀고 있다. 그뿐인가 윈도 NT는 초기에는 이제 임베디드 시스템에서나 볼 수 있는 MIPS를 비롯해 DEC의 알파, 파워PC도 지원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x86을 주로 하고 아이테니엄도 지원하는 사실상 x86 전용 운영체제가 되어 버렸다.

하여튼 이 두 동반자가 랠리를 주도하는 동안 DRAM을 비롯해 다양한 부품 시장이 동반 성장했고 많은 투자와 경쟁, 규모의 경제로 인해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져 그 효과는 PC뿐 아니라 서버, 임베디드 시스템까지 미치고 있다. 이 와중에 엔비디아 같은 GPU 업체, 삼성전자와 같은 DRAM•플래시 메모리 업체, HDD 제조사 등 많은 관련 업체가 성장을 거듭했다. 심지어 애플도 이러한 규모의 경제에 편승하기 시작했는데, 1995년에는 NuBus 대신 PCI를 채용했고, 1997년 잡스의 귀환 후에는 아예 SCSI, ADB(Apple Desktop Bus) 등으로 대표되던 독특한 인터페이스 대신 USB를 전면으로 내세웠고, 이제는 아예 윈도 XP를 돌릴 수 있는 인텔 구조로 넘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라는 쌍두마차에 의한 혁신의 랠리는 어떤 면에서는 최근 몰락을 맞은 20년 간의 유래 없는 장기 경제 호황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는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성장 지향 국면이었다는 면에서 말이다. 사실 PC에 있어서는 수요가 기술 혁신을 끌었다기보다는 기술 혁신이 수요를 견인한 면이 크지 않았던가. 다행인 것은 최근의 미국식 금융 시스템의 몰락과 연이은 실물 경기 침체 같은 후퇴와 달리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주도의 랠리가 이뤄 놓은 것은 분명 다른 대안으로는 얻을 수 없고 후퇴시킬 수도 없는 눈부신 발전과 대중화다.

그렇다면 관심은 이 랠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으로 옮겨진다. 윈도 비스타가 주춤한 것을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랠리를 이어갈 원동력 상실의 징조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일까? 멀티코어 경쟁으로 옮겨 붙은 CPU 시장에서 2개 코어로 잘 도는 멀쩡한 PC를 버리고 코어가 늘어났다는 이유로 그저 새로운 PC로 옮겨 탈까?

이 랠리 속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다양성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다양성에 의한 또 다른 성격의 성장이 새로운 랠리를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오픈 소스로 쌓인 다양한 인프라, 노트북에 의해 촉발되고 넷북으로 이어지는 컴퓨팅 장치의 특성 변화 등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성에 의해 견인되는 새로운 성장”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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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과거에서 다양성을 회상하다

은퇴한 줄 알았던 왕년의 인기 가수 이선희 씨가 돌아온단다. 이선희 씨의 히트곡 중 하나인 “아 옛날이여”가 기억난다. 이선희 씨의 데뷔는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1984년이고 그 곡이 수록된 이선희 1집은 1985년에 발매됐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 우리나라는 애플II와 일본에 뿌리를 둔 다양한 8비트 컴퓨터가 공존했던 다양성의 전성기였다. 물론 일본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로 8비트, 16비트였던 이른바 홈 컴퓨터 내지 취미용 컴퓨터(hobby computer)가 얼마나 다양했는지 궁금하다면 여기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애플II나 TRS-80의 클론이나 MSX가 여러 회사에서 호환 기종이 생산된 경우도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이 많은 컴퓨터가 수년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더 놀랄만한 것은 컴퓨터 종류만큼이나 CPU도 다양하고 운영체제(사실상 펌웨어 수준인 것도 많았지만)도 다양했다는 점이다.

이런 다양성이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됐을 수는 있다. 당시에도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도로 만들어진 MSX 같은 컴퓨터가 있어서, 오늘날의 PC처럼 다양한 회사가 동일한 규격의 컴퓨터를 생산하고 판촉하는 모델이 시도되었다. 또, 애플II는 다양한 클론이 존재해 그 역시 어느 정도의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차치하고 다양성의 긍정적인 부분을 한번 짚어 보자.

단순함의 미학, 단순함의 매력
요즘 학생들이 게임기나 PMP, 전자사전 등을 사달라고 조를 때 내세우는 명분은 “공부에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다. 1980년대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 광고의 “나는 컴퓨터 학습, 엄마는 가계관리, 아빠는 사무처리……”라는 문구처럼 8비트 컴퓨터로도 못하는 것이 없어야 했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만 지나면 부모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하여튼 당시 컴퓨터가 굳이 만능 기계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단순한 게임에 간단한 프로그래밍만 해도 충분한 사람도 있었고, 워드프로세싱만 할 수 있어도 되는 사람도 있었으며, 낮은 비용으로 비디오 편집이나 작은 방송국을 꾸미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3차원 그래픽을 모델링하고 렌더링하기 위해 가능한 성능이 높은 컴퓨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각 컴퓨터는 필요 이상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애플II나 MSX 같은 컴퓨터는 16KB, 32KB 정도 크기의 시스템 ROM 코드가 거의 완전히 분석되어 있었고 따라서 컴퓨터의 모든 측면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일례로 MSX의 경우 어떤 모델은 같은 주소에 RAM을 매핑하고 ROM을 복사해 사용하면 ROM 어느 부분이든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다. 실제 매달 컴퓨터 관련 잡지 책을 보면 갖가지 기발한 방법을 동원한 팁이나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었다. 내가 가진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다른 컴퓨터에서 시도된 내용도 매우 흥미진진했고 참고할 만했다.

오늘날 GNU/리눅스의 경우에도 운영체제의 소스 코드가 완전히 공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버/데스크톱을 아우르는 범용 운영체제이다 보니 그 방대함에 솔직히 파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신 개념은 모두 복잡하고 방대하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다양성으로 인해 기능이나 용도에 따라 단순화된 많은 플랫폼이 존재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시스템 깊은 곳까지 쳐다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고 여기에서 다양하고 유쾌한 혁신이 싹트게 되지 않을까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다양한 시도
호환되지 않은 많은 컴퓨터가 시장에 나와 있으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는 방해가 되겠지만, 반대로 최소한 적정 규모의 니치(niche)를 바라보고 과감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그 당시는 새로운 시도로 가득했다. 좋게 이야기하면 표준화된, 나쁘게 이야기하면 획일적인, 요즘 상황과는 달리 다양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혁신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82년 발매된 코모도어 아미가는 당시 IBM PC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던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윈도우 시스템을 지원했고 2D 그래픽 가속과 다채널 PCM 음원을 지원했다. 반대로 어떤 컴퓨터는 당시로도 10만원 대였는데 요즘 소형 키보드만한 크기에 베이직 언어를 지원했다. 프린터, 플로터 등 다양한 입출력 장치를 내장한 모델들도 시도되었다.

최근에는 소수 빅 플레이어들의 싸움으로 귀결되었지만 기발함으로 승부하는 휴대/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는 당시 홈 컴퓨터 시대의 자유로움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 기발한 입력 장치, 기발한 구조가 시험될 수 있기 때문에 게임기 시장은 늘 흥미진진하다. 1983년 발매되어 게임기의 대명사가 된 닌텐도 패미컴 이후 계속되는 게임기 전쟁에서 몰락해 버린 닌텐도가 최근에 와서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지르는 쾌거를 올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게임기 시장이다.

세상에 옳은 한 가지 발전 방향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면서 다양성이 공존해야 더 많은 사람을 더욱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 다양한 아이디어
요즘처럼 해당 분야의 빅 플레이어가 자본의 우위와 절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모델과 달리 당시는 더 많은 사람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 조직 내에서라면 필연적으로 상충하는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겠지만, 서로 다른 조직 내에서 각기 다른 시도를 하는 거야 뭐 어떻겠는가? 소니의 대 히트작이었던 워크맨의 경우에도 다들 실패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회장의 결단과 혜안에 의해 상품화되었다고 한다. 항상 조직의 판단이 옳지만은 않다. 따라서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에게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애플에서 나온 두 사람이 걸출한 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아는지? 바로 스티브 잡스의 NeXT와 쟝-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의 BeBox다. 둘 다 하드웨어로는 실패했지만 NeXT의 핵심이었던 NeXTSTEP은 지금 Mac OS X이 되었고, BeBox의 운영체제였던 BeOS는 잘 설계된 OS로 아직까지도 복원 움직임이 있을 정도다. 이것들은 많이 사용되느냐 여부와 관계 없이 여러 혁신을 담았고 다른 시스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수의 사람과 조직에 자원이 집중되기보다는 이제 더 많은 사람에게 자원이 분배되고 기회가 주어지는 분위기가 있어야 컴퓨터 하드웨어와 플랫폼에 있어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가진 지식이 일천했고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추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의 컴퓨터는 단순하면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두근거림을 선사해 줬다. 그저 정해진 로드맵을 따라 빨라지고 용량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가 가득했다. 오늘날에 이런 두근거림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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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가능성을 엿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보면서 어쩌면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놈을 밀어주는 모델에서 다시금 다양성과 엉뚱한 시도로 옮겨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소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보따리를 한번 풀어 보겠다.

제한된 유틸리티를 가진 기기의 등장
시장 동향 분석과 예측에 이견이 많기는 하지만 성능과 용량 향상 일변도로 흘러가던 PC 시장에는 이전과 축이 다른 변화가 보인다. 노트북 시장의 확대와 넷북이라는 서브노트북 시장의 확대다. 전력 소모가 중요해졌고 물리적인 크기나 다양한 입력 장치가 중요해졌다. 특히 넷북에 들어와서는 제2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워드프로세서를 쓰고 간단한 웹 서핑만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구입한다. 이런 탓에 넷북의 운영체제로 인텔부터 GNU/리눅스를 밀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파일 교환만 가능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오피스 프로그램과 웹 브라우징만 제대로 지원되면 운영체제가 윈도이든 리눅스든 아니면 제3의 새로운 플랫폼이든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최근 SDK에 대한 접근이 기존 스마트 폰보다 쉬워지고 적절히 하드웨어 성능이 향상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반 G1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제한된 유틸리티를 가지는 또 다른 한 부류의 장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스마트 폰은 기존의 전화, PDA, MP3P, PMP, 게임기 등 많은 기능을 통합한 복합기 형태로 볼 수 있지만, 기존 범용 컴퓨터를 생각할 때는 전화 기능을 중심으로 몇몇 단순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제한된 유틸리티를 가진 장치로 볼 수 있다. 비록 아이폰이 Mac OS X 기반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안드로이드가 하부에 GNU/리눅스를 사용하지만, 스마트 폰이라는 환경에 맞게 단순화했기에 매킨토시나 GNU/리눅스를 목표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할 때보다 부담 없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 서버는 어떤 기능을 하든 메모리와 CPU 성능의 차이만 둘 뿐 대체로 동일한 하드웨어 구성에 같은 운영체제를 탑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웹 서버를 탑재한 전단(front-end) 전용 서버들을 전진 배치해 그 용도로만 사용하는가 하면 자바 기반의 비즈니스 로직만 돌리는 서버들도 있다. 맨 하단에는 DBMS만 실행하는 전용 서버가 있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제한된 유틸리티를 가지는 서버가 늘어남에 따라 단순하게 주어진 역할에 맞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맞춰서 설계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게 된 것이다. 일례로 아직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Azul Systems는 수백 개의 코어를 탑재하고 수백 GB의 메모리를 탑재하고 하드디스크나 통상적인 운영체제조차 없이 그저 자바로 된 비즈니스 로직만 돌리는 어플라이언스(appliance)를 판매한다.

이처럼 제한된 유틸리티를 가진 장치가 전면으로 재등장하는 상황은 다시금 특정 유틸리티에 특화된 단순화된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아닐까 한다. 결국 제한된 유틸리티만 만족하면 굳이 특정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 얼마나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적극적 수용
최근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의 등장 그리고 개발자와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수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딸려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은 닳고 닳은 플랫폼만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분야에서 기본적인 유틸리티를 만족하고 충분히 이점만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폰의 경우 매킨토시가 없이는 개발이 불가하므로 과연 매킨토시 사용자이면서 매킨토시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지 않던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폰 개발에는 맘을 열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구글 안드로이드의 경우 일부 자바 API를 사용하지만 GUI 등 무시 못하는 부분에서 기존 자바SE나 자바ME와 다른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개발자가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또 다음 행보로 넷북용 운영체제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충분히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혁신이 있다면 제2, 제3의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고 충분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값싼 하드웨어, 오픈 소스로 공개된 인프라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에 있어 큰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재까지의 랠리로 인해 축적된 싸고 뛰어난 부품과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다. RAM, 플래시 메모리 가격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떨어졌고 저렴한 가격의 32비트 CPU, 그래픽 가속칩이 널려 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다.

예를 들어 GNU/리눅스는 그 자체로 완전한 플랫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혁신을 하기 위한 하부 구조이고 재료이기도 하다. 안드로이드를 보자. 안드로이드의 하부에는 리눅스가 있지만 개발자와 사용자가 보는 플랫폼으로서의 특성은 리눅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Dalvik VM과 자바 API를 기반으로 한 안드로이드 API가 그 특성을 규정한다. 다른 예로 매킨토시와 아이폰에 사용된 Mac OS X도 비슷하다. 하부에는 Mach OS에 다수의 BSD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하지만 Mac OS X은 그 하부가 아니라 Objective-C 언어 기반으로 구축된 코코아 프레임워크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

이와 같이 혁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풍부하다는 것은 특색 있는 하드웨어를 기획하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혁신을 하되 TCP/IP 스택 같이 필수적이지만 새로 작성하기에는 방대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많은 하부 구조는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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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함을 꿈꾸며……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다양함이 가능할까? 분명한 것은 굳이 현재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선의 다양함만으로 우리의 생각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유틸리티의 기기들
지금까지 언급한 기기는 게임기, 넷북, 스마트 폰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벌써 아마존의 킨들(Kindle) 같은 경우 네트워크에 연결된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유틸리티 단말이 대중화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전 8비트 컴퓨터에 프린터나 플로터가 내장된 기기가 있었던 것처럼 다양한 입출력 장치가 더해지면서 어느 정도의 범용성은 가지되 해당 유틸리티에 초점을 맞춘 다양하고 단순한 기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가능성은 비단 휴대용 기기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 가전기기나 특화된 서버 어플라이언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오늘날 기기의 유틸리티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다. 광대역 유선망은 물론이고 이제는 바야흐로 무선에 의한 유비퀴터스한 접속으로 기기와 기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있다. 아마존의 킨들이 호평을 받는 이면에도 이통망을 통한 즉각적인 콘텐츠 구매가 있고, 스마트 폰이 주목 받는 이유도 연결된 기기라는 측면이 강하다.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새로운 유틸리티 기기가 등장한다면 “연결”이라는 화두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운영체제
C/C++로 작성된 기존 코드를 활용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새로운 언어나 전혀 새로운 특성을 가진 운영체제 같은 것도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발자나 사용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은 우선 하드웨어 사용 효율을 높임으로써 기기 가격을 현저히 낮추거나 전력 효율을 현저히 높이거나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또 기존과는 확실히 다른 장치를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화두가 되는 SSD 대신 플래시 메모리와 EEPROM 같은 필요한 요소를 조합해 플래시 메모리 기반 스토리지를 제공하는 서버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단순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예전 홈 컴퓨터처럼 다양하게 소프트웨어 변경을 가하고 그 내용을 사용자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등 더 많은 자유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CPU
x86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전력 소모나 성능 측면에서 많은 시도를 해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맞춘 새로운 CPU를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CPU를 설계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고 인텔과 같은 규모의 경제가 없이는 고성능 범용 CPU를 낮은 가격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굳이 인텔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요즘 많은 DSP가 적절한 가격으로 생산되어 PC 외의 다양한 기기에 탑재되는 것처럼 전력 소모, 멀티미디어 등 특정 목적에 특화된 CPU가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다. 특히 자바와 같이 프로그램 실행 모델 자체가 특화된 경우는 거기에 더 적합한 CPU 구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MMU보다는 가베지 컬렉션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넣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제대로 상용화되지 못했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으로 썬의 MAJC이 있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다양성에 의한 새로운 랠리에 대한 가능성을 나름대로 꿈꾸어 보았다. 사실 예상도 예언도 아니고 이러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분석과 기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회에 스스로가 혁신이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다. 어떤가? 무엇보다 세상은 다양해서 재미있는 곳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다양성과 단순함을 8비트 홈 컴퓨터의 전성기와의 연관시킬 수 있게 해 주고, 기기의 유틸리티에 있어 연결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일깨워주는 등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박재호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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