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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지역 근대화의 상징, 서구호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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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성 yooseong@debian.org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 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8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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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창, 고급호텔>>
발레리 줄레조 외(지음), 양지윤(옮김) (후마니타스, 2007년 10월)
대체로 한국의 고급호텔을 보면 호텔 인테리어나 많은 외국인 때문에 어색함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도 잠시, 고급호텔을 이용한 한국인들은 “우아함, 세련됨, 차별성이 보이는 서구성”을 경험했다는 것에 우쭐해 하기까지 한다. 즉 한국인들은 내부구조나 편의성에 고급호텔의 가치를 둔다기보다, 호텔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를 특정한 계층에 자리매김하는 상징 효과를 더 크게 느낀다. 이 책은 이런 상징 효과를 드러내는 고급호텔의 지위를 한국 사회에서 좀더 확장하여, 동북아시아의 고급호텔 연구를 통해 “도시구조 형성과 변화 그 안에 이루어졌던 물리적/사회적 현대성의 문제”에 접근했다.
동북아시아의 고급호텔과 서구의 고급호텔의 차이점은 첫째, 세계 각국의 식당을 보유하고 있으며 둘째, 여러 가지 행사를 위한 연회장이 마련되어 있고 셋째, 투숙객을 위한 편의시설과 운동시설은 기본이며, 넷째, 나이트클럽과 같은 대규모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 전체 매출액의 반은 외국인 숙박이며 나머지는 중산층 사교문화의 소비로 채워진다. 동북아시아의 고급호텔이 보여주는 이러한 기능을 통해 지은이들은 도시 발전과 그에 따라 나타나는 도시의 경관을 역사/문화/정치/경제적인 맥락에서 호텔을 지리적 단위로 살펴보았다.
우선 서구 사회에서 고급호텔이 어떤 계기로 나타났는지 살펴보자. 19세기 들어 서구 사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철도 교통이 발달했고 부르주아 계층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숙박시설이 필요했다. 서구 사회에서 고급호텔은 보스턴의 ‘트레몬트 하우스’를 시작으로 1852년 뉴욕의 세인트니콜라스 호텔이 등장해 트레몬트 하우스를 앞서간다. 서구 사회에서 고급호텔은 “도시경제 발전과 사회 혁신의 표상으로서” 자리매김을 하였다. “도시의 경제 발전과 사회 혁신을 위풍당당하게 드러내며 건축기념물로서 자리잡고 이를 경관으로서 나타내려는 욕구가 만들어낸 도시 중심성의 출현과 고급호텔의 등장 시기는 일치한다.”(18쪽)
19세기 유럽 부르주아들은 고급호텔을 사교 장소로, 신분 상승을 위한 부르주아들의 욕구를 “구체제 내의 귀족의 지표와 모범을 통해 실현”하려 하였다(18쪽). 19세기 고급호텔 유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미국식 대형호텔로 편의성을 강조하여 “도시중심부에서 철도역이나 항구와 빠르게 연결되는 위치상의 장점을 가졌다.” 둘째, 해수욕장과 같은 휴양지 레저호텔이다. 즉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셋째, “팔레스”로 알려진 형태로 친근감과 엘리트만의 공간으로 보이기 위해 크기를 줄였다. “여기에 호화로운 장식과 귀족사회의 관행을 계승”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부르주아들의 요구와 함께 이른바 ‘근대화’의 과정을 밟아간 서구 고급호텔과 달리, 외부 세력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아시아 지역에서 고급호텔 설립은 역사의 특수한 국면에 따라 그 목적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공통적으로 아시아의 고급호텔은 그 중심을 “위치의 중심성과 쉬운 접근성”에 두었다. 거기에 자국인들에게는 사교 장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국적인 “특별한 장소”를 제공한다. 그러면 이 책에서 언급된 한국의 호텔을 통해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깔끔함, 도시 역동성과 현대성을 강조한” 서울의 고급호텔
외세와 큰 충돌 없이 문호를 개방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1876년, 일본에 의해 개항이 되면서 항구와 대도시에 여관이 문을 열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1890년대에 남산 기슭에도 숙박시설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당시 숙박시설은 전통적 숙박 형태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 후 1888년 인천에 한국 최초 호텔인 “대불호텔”이 등장했고 철도가 건설됨에 따라 “부산철도호텔”과 같은 철도 호텔이 등장했다. 이런 호텔들의 등장에 이어 서울에는 1914년 최초의 고급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호텔이 완공된다.
이 당시 조선호텔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일본에 지어진 서구식 고급호텔 모형을 따랐다.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출입구 검열이 엄격했다. 호텔 입구의 엄격한 검열로 출입을 제한해 조선호텔은 식민지 엘리트의 상류계급들을 위한 사교와 문화공간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 식민지 시대였기 때문에 심지어 “호텔 내부에서 직급이 낮은 한국인 동료들은 일본인들에게 차별받기” 일쑤였다. 심지어 복장이 고급스럽지 못한 일본인조차 출입이 거부됐다.
자신의 부에도 불구하고 조선호텔 출입시 입었던 복장 때문에 출입을 거부당한 일본인 실업가 노구치는 자신이 직접 호텔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이 호텔이 바로 반도호텔이었고 그 크기와 현대성에서 조선호텔을 압도했다. 형태는 아직 유럽식 팔레스 모텔이었으나 “호화로움과 현대성의 조화”를 목표로 했다. 이 당시 호텔 경영은 모두 외국인이 맡았으며 위생적인 면과 서구적 스타일의 호텔 내부를 한국 사회에 조금씩 심어나갔다.
일제식민지를 지나 미군정을 거치며 조선•반도호텔에서는 미국인 주도의 사교 모임이 활발했다. 지배층의 사교 장소로 호텔이 쓰이면서 1970년대 초까지 국가가 호텔을 관리했으며 관광공사가 영빈관과 조선•반도호텔까지 모두 관리했다. 미군정 영향으로 미국인들 투숙이 늘어나면서 미국식 리조트 호텔인 워커힐호텔이 1963년에 개관한다. 이에 자극 받은 조선호텔은 재건축을 통해 많은 객실을 확보한 미국식 호텔로 변모했다. 뒤이어 재벌까지 호텔사업에 뛰어들면서 고급호텔 건축이 늘어난다.
1970년대 이후 정부가 관광 부문 지배를 강화함에 따라 재벌기업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대형호텔 운영을 맡는다. 한국의 고급호텔은 경제성과 “자기 발현수단”을 드러냈기 때문에 재벌기업은 고급호텔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호텔은 대기업의 이름 아래 “신용장”을 얻은 셈이었다. 이러한 경우는 서구 사회에서는 살펴보기 힘든 한국의 고급호텔 건립의 특수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한국에 들어선 서구식 호텔은 한국 전통의 숙박시설과 단절된 형태이며 1970년대 이후 미국식의 대형화된 고급호텔들이 한국의 고급호텔을 장악하였다. 미국식 호텔을 따른 것은 미군정과 올림픽 같은 국가적 사안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 취향과 대단위 외국인 투숙객을 유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호텔 특히 서울에 집중된 고급호텔은 몇 가지 유형을 따른다. 첫째, “도시 구조의 중요요소”로 도심에 위치한 조선•롯데호텔, 무역협회 부지에 위치한 인터컨티넨탈•롯데월드호텔이 있으며, 둘째 “중심업무지구의 호텔”로서 도심에서는 좀 떨어져 있으나 “성장중인 중심업무 지구 안에 위치한 도시계획의 산물”로서 하얏트•르네상스•매리엇 호텔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레저용 호텔로 도시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녹지대에 위치한 호텔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그랜드 힐튼 호텔과 워커힐 호텔이 있다. 도시가 지금의 호텔을 만들었지만 호텔은 다시 도시 건설에 한몫을 담당한 셈이었다.
호텔은 도시의 기본 모델로 그 위치를 잡았다. 고급호텔은 도시 현대화를 앞당기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고급호텔은 경제적이고 상업적 차원 이상으로 확대되고 호텔 기능 이상으로 그 역할을 한다. “조선호텔과 워커힐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고급호텔들은 한국경제 발전과 도시 성장기인 1976~2000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이 때 지어진 고급호텔은 “사업과 오락 등 도시 활동” 장소와 가까우며 그 주변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도왔다.
고급호텔은 많은 경우 외국인 투숙을 목적으로 하므로 “국제문화 전파장소”의 역할도 수행했다. 힐튼호텔의 경우 “외국인 고객에게 고상한 취향의 내 집 같은 느낌을 주는 요소인 세계 각지의 예술작품이나 기술적인 부분들을 이용하였다.” JW 매리엇과 같은 호텔은 호텔 내 경영방식에 있어서도 외국계 회사가 “종업원들의 참여와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에 종업원들도 외국문화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특히 일부 종업원과 요리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화통합의 장소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호텔은 신흥 중산계층의 사교 장소였고 호텔 입장에서는 외국인 투숙객만큼 내국인 고객도 중요했다. 한국인 고객들은 학회나 기업의 워크숍 장소로 호텔을 이용하는 경우와 호텔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위락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호텔의 상징 효과를 한국인들이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우아함과 세련됨, 차별성이 보이는 서구성”을 호텔을 이용함으로써 느끼게 된다. 이는 고급호텔 내의 온돌방 객실 연간 이용률이 저조함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중산층들에게 고급호텔은 “기분전환을 위해 오는 도피의 공간”이면서 외국문화를 접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계급”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서구와 접촉하는 대상으로 고급호텔을 선호하는 것이다. 중산층은 서구 사회와 접촉한다는 사실이 자신들이 상류층임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결국 호텔 경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외국인 투숙에 투자를 하는 것만큼 내국인들에 대한 서비스도 비중을 두어 관리를 하는 것이다.
서울의 고급호텔들은 도시 역동성의 중심부에 자리매김하며 호화 서비스의 복합체를 형성하고 도시의 진정한 중심축이며, 자본화할 수 있는 흐름을 발생시키는 기능을 선도한다. 결국 서울의 고급호텔은 숙박이라는 기본 기능은 물론이고 경제적 차원을 넘어 문화 전파 역할도 담당하였다. 일제시대 호텔들이 내세운 위생과 서구 스타일 경영과 같은 “깔끔함과 현대성”을 일부는 꾸준히 이어가고 일부는 도시 발전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특히 서울에 세워진 호텔의 역사와 그 의미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는데 관심가는 독자라면 일본과 중국의 경우도 살펴봄으로써 한국과 다른 면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일수호통상조약(1858)을 체결하면서 서구인들이 낯설어 하지 않을 숙박시설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일본 전통 숙박시설 색채가 철저히 배제된 데이코쿠 호텔 같은 고급호텔 건축이 시작됐다. 중국의 경우 두 번의 아편전쟁(1839~1860) 이후 문호 개방과 동시에 개방 지역인 조차지에 고급호텔이 들어섰다. 대표적 조차지였던 텐진 지역의 뤼신더 호텔도 서구인들에게 “그들의 도시적 틀과 사회적 틀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특수한 도시 건축의 장소”였다. 여기에 조차지로서 “정치•외교적 교섭기지” 역할도 해야 했다. 확실히 일제식민지 시대의 조선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고 한국에 설립된 서구의 고급호텔들은 그 호텔들이 처음 지어진 곳의 지역색이나 건물의 특징 같은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대신 고급호텔 이름을 내걸고 ‘고급 이미지’로 세계와 만나려 하고 있다. 문호 개방 이후 현재 한중일 지역의 고급호텔들은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에게 친숙함을 주고 서구 문화 수용의 창구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과거 엘리트 계층이 아닌 근대화와 함께 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자기 과시의 장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 숙박시설의 표준으로 고급호텔이 보여주는 “우아함, 세련됨, 서구성”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앞으로 호텔이 어떤 형태로 탈바꿈할지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보자.
이미 한국의 아파트 건축과 관련한 책(<<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년 2월))을 통해 한국과 친숙한 발레리 줄레조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호텔이라는 건축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정작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저작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 볼프강 쉬벨부쉬(지음), 박진희(옮김), <<철도여행의 역사>> (궁리, 1999년 12월)
- 에릭 홉스봄(지음), 김동택(옮김),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98년 9월)
- 강준만(지음), <<한국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인물과 사상사, 2002년 11월)
- 발레리 줄레조(지음), 길혜연(옮김), <<아파트 공화국>> (후마니타스, 2007년 2월)
- 도미타 쇼지(지음), 유재연(옮김), <<호텔: 근대 문명의 상징>>(논형,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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