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세상, Part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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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sinabrlo@hanmail.net
짧지 않은 뜨거운 현업 프로그래머 생활을 잠시 접고 학교로 돌아와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의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연구 이외에 '따뜻한 디지털 세상', 'IT 갤러리' 등의 월간지에 정보통신 관련 컬럼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으며, 근래 개발자와 이공계를 위한 글쓰기 책을 퇴고하고 있다.
2007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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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해외 출장 1년 만에 돌아와 전철을 탔다면, 전과는 다른 광경 하나를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처자들의 치마 길이가 더 짧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필경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 손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일 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MP3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꼽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앙증맞은 안테나를 내민 작은 텔레비전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스타크래프트 중계나 무한도전 재방송을 즐기고 있다. 덕분인지 요새 젊은이들은 보통 TV 앞에 잘 앉아 있지 않는다. 수백 수천 곡을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가, 집안에 자랑스럽게 모아놓았던 오디오와 수백 개의 카세트 테이프, CD 음반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린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각자 들고 다닐 수 있는 손바닥만한 텔레비전이 집안 가전의 터줏대감인 대형 텔레비전을 점차 옛날 것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속도대로라면, 궁극적으로 사람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감정을 지닌 기계들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과거 만화가들이나 영화제작자들이 묘사했던 대로 기계들의 모습이 인간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하는 일이 점차 사람스러워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소리소문 없이, 그렇지만 매우 빠르게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결국 기계도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주민번호를 받는 녀석들도 생겨날지 모르겠다.
생각의 법칙
처녀가 저절로 애를 배었을 리 없듯,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결국 어떤 결과에까지 이르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사람이 생각을 해내는 것 역시 분명 어떤 규칙과 체계 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고 타당하게 생각해 내는 이런 과정을 서양 사람들은 논리라고 이름 붙였다.
200년 전에 살았던 영국의 수학자 조지 불은 이 같은 논리의 세계를 숫자로 나타내고 계산해 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내었다. 이 논리의 세계를 수의 세계로 담는 방법을 소개한 그의 책 제목은 『생각의 법칙(The Law of Thought)』이다. 딱딱한 수학책일 것 같은 첫 인상과는 달리 서문은 매우 근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는 마음이 작용하는 방법, 즉 생각의 법칙을 탐구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철학자들의 영역이던 생각의 법칙을 불은 수학 세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개발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불리언이라는 말은 맞음과 틀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수학자 불을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전기가 통하고 통하지 않음을 조절할 수 있는 전기 스위치인 트랜지스터가 발명되면서, 맞고 틀림의 논리의 세계를 기계로 구현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불이 꿈꾸었던 생각의 법칙이 컴퓨터라는 형태로 재현되는 순간이자 기계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란 불이 담아내고자 했던 빈틈없고 애매함이 없는 논리의 방식을 뜻한다.
그렇지만, 너무나 엄밀한
컴퓨터 생각의 법칙은 논리 그 자체다. 논리라는 것은 중간 과정 중 잘못된 것이 하나로도 있으면 전체를 불신하게 되는 치열한 엄밀성을 요구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으라는 말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 이 융통성 없는 녀석은 단 한 개의 0이 1로 바뀌거나 1이 0으로 바뀌어도 견디어내지 못한다.
성공의 상징으로 통하는 독일 고급차들이 중고값이 떨어질까 쉬쉬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곧잘 망가진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근래 자동차들은 기어와 엔진같은 기계 부품들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위 밝기에 따라 라이트 밝기를 조절하고 타이어 마모 정도를 파악하며 회전 방향으로 헤트라이트를 켜고 좌석을 운전자에 맞게 조절하는 등 근래의 차들은 단순한 자동차라기보다 거의 로보트 수준이다. 자동차에 컴퓨터가 도입되면서부터 생긴 변화인데, 많은 경우에는 70여 개의 작은 컴퓨터가 들어간다.
프레젠테이션 하면 ‘지루하다’는 형용사가 어울리듯, 부끄럽지만 컴퓨터에 어울리는 말은 ‘다운된다’이다. 그렇다. 자동차가 다운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행장치 같은 기계 장치는 겉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문제점을 식별해 내기 수월하지만, 컴퓨터로 동작되는 장치들에 전기와 자기의 형태로 저장된 0과 1 덩어리들은 볼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문제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다운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수 밖에 없다. 기계 장치들은 조금 어긋나 삐걱삐걱 소리를 내도 운행할 수 있지만 컴퓨터 장치들은 단 한 개만 어긋나도 먹통이 되어버린다. 이런 경우 수리 방법이라고는 죄다 새 버전으로 다시 설치하는 것이다.
이를 비단 개발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컴퓨터가 프로그램 덩어리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컴퓨터의 생각 흐름은 반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컴퓨터는 0과 1로 이루어진 완벽한 디지털 세상이지만, 그 디지털 세상을 뒷받침하는 반도체는 디지털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반도체라는 녀석이 항상 정확하게 동작하리라는 것은 희망일 뿐이다. DRAM의 수율을 보면 100%가 아니다. 수율이란 생산 대비 제품으로 실제 출시되는 비율을 말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율을 자랑하는 하이닉스와 삼성의 DRAM의 수율은 80% 수준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계가 뱉어내는 DRAM 10개 중 2개는 불량이라는 것이다. 불량률이 이 정도면 전수검사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즉 전 제품을 일일이 다 검사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검사도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율을 위해 가장 문제가 되는 항목 위주로 집중 검사하게 되어 있어 사실상 모두 검사하는 것도 아니다. 운이 없어 그 예외에 걸리게 될 확률은 얼마든지 있다. 이는 반도체 전반의 특징으로 생산되어 나오는 녀석들이 똑같이 보이지만, 성능과 특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따라서 전산 분야에 항상 따라다니는 이슈가 이중화와 백업이다. 이 문제를 잘 다루면 다룰수록 베테랑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이쪽 분위기다.
이런 지경이기 때문에 사람의 목숨과 안전에 관련된 일에는 컴퓨터가 쓰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돌아보면 안전에 관련된 기계들은 단순하게 만들어진다. 컴퓨터가 이식되면 더 복잡한 기능을 넣을 수 있어 더 편리할 테지만, 동작 중에 다운이라도 된다면 목숨을 담보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얼마 전 자동 주차 시스템이 장착된 렉서스의 자동 주차하는 모습이 UCC에 공개되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대단하다, 저런 기능이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 초보 운전자들과 아주머니들은 의무 장착해야 한다는 등 각종 의견이 올라 왔다. 그러나 이 완전 자동 주차 시스템은 결코 상용화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책임 문제 때문이다. 99.9% 이상 완벽하게 동작하지만 만에 하나 인식을 잘못해 사람을 치어버린다면 이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자동차 제조회사? 운전자? 보험회사?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1대만 말썽을 피워 손해 배상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수천 대를 팔아 남긴 이익을 홀랑 다 날리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개발되어 있는 자동 주행 시스템도 마찬가지.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느냐이다. 운전자가 자동 주차 기능 사용으로 야기되는 어떠한 민형사상의 문제에 책임을 지겠다고 약관에 동의를 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과연 기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 책임을 지운다면, 어떻게 물어야 할 것인지.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최종 책임은 사람이 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행 버튼 역시 사람이 누르게 될 것이다.
무한히 확장, 발전할 것 같은 기계와 컴퓨터도 이 같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기계는 판단에 근거를 기록하고 통계를 내주고 조언은 해줄 수는 있겠지만, 경우의 수가 매우 많은 사람이 관련된 일에 기계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로봇이 나온다 한들, 거리를 활보하는 일도 물론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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