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책꽂이 |
식물-인간의 공생과 공진화 ‘욕망의 식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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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성 yooseong@debian.org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7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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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유럽에서 근대 이전까지 인간의 이성은 플라톤이 언급한 “이데아를 포착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되었다. 하지만 근대가 되면서 이른바 “이득과 편의”라는 “욕망”이 근대인의 삶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욕망은 정념에서 출발하며 고대의 “이성”의 자리를 차지한다. 근대의 연장선에 사는 우리는 당연하게 “욕망”의 그늘 아래에서 암암리에 “내가 욕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원동력을 “욕망”이라 할 수 있고(속칭 “지름신”도 일종의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이 인간의 욕망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의 탄생과 변형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표출되는지 살펴본 책이 바로 [[욕망의 식물학]](마이클 폴란 지음, 이창신 옮김, 서울문화사, 2002년)이다. 이 책은 네 가지 식물과 이에 얽힌 인간의 욕망, 그 변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감미로움”의 욕망에 걸린 사과, “아름다움”의 욕망에 대응하는 튤립, “도취”에 해당하는 마리화나, “지배”의 욕망과 연결된 감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에는 이 네 가지 식물 중 사과와 튤립을 중심으로 소개할 것이고 나머지 두 가지 식물에 대해서는 그 세계를 책을 통해 들여다 보면 좋을 것이다.
모든 식물은 기본적으로 주변 환경과 동물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식물은 다른 생명체를 교란시키는 독소 등을 내놓는 일보다 다른 생명체의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왔다. 이러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식물이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식물이 보기에 자신의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로 인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 생존 전략을 마련하였다. “꽃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유혹하기도 하고 용도와 맛으로 인간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식물의 생존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공진화적 관계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며, 객체인 동시에 주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네 가지 식물에 대해 쓴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사과는 과일의 대표이고, 튤립은 꽃의 대표이며, 마약의 대표는 마리화나이고, 감자를 필수식량의 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여기에 지은이가 이 모든 식물을 다 심고 재배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 식물의 내면에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럼 이 네 가지 식물이 인간의 욕망과 어떻게 연결되고 표출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사과, 욕망-감미로움
미국 역사상 사과를 미국 전역에 널리 퍼뜨린 사람이자 자연주의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 바로 “조니 애플시드”라는 애칭을 가진 존 채프먼이었다. 사과를 미국 식물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사과는 분명히 미국 땅에 대해 외지 식물이었다. 조니는 사과를 개량된 형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미국에 들여왔다. 사과의 모습을 본 미국인은 모두 처음에 이 식물에 대해 적응을 잘 못했다. 시간이 흘러 사과의 달콤함이 미국에 서서히 자리 잡았고 이 과정 속에서 사과 보급에 앞장섰던 조니의 역할도 크게 부각되었다.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삶과 부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조니는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았고 인디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자연친화적 삶을 산 대표적 인물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1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았다.
사과나무가 자라 그 열매를 맺고 나서 그 사과 씨가 땅에 묻혀 다시 사과나무로 자란 뒤 나무에 열린 열매는 자신의 부모와 다른 형질로 나타나며 접붙이기를 계속 하지 않으면 시큼한 맛이 너무 강해져 먹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사람들은 사과주로 만들어 마셨다. 하지만 사과주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00년대에 미국 정부는 강력하게 “금주법”을 시행하였고 사과 농장주들은 자신의 사과를 어떻게든 홍보해 팔아야 했다. 그 과정 중에 나온 표어가 “하루에 한 개의 사과는 건강에 이롭다”였으며 이 때부터 사과의 달콤한 맛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과는 그 윗세대와 전혀 다른 형질을 보이는 특성 때문에 어떤 환경에 두어도 그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나온다. 사과의 조상은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리라 보며 비단길을 통해 유럽으로, 다시 미국으로 이동했으리라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과정 동안 중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접붙이기 방법을 고안했고 이 기술은 그리스, 로마를 거치면서 다양한 종류의 사과 재배가 시작된다. 서유럽을 거쳐오면서 여러 형질이 생겨난 사과는 미국 토종 야생사과와 교배를 시키고, 조니의 엄청난 노력으로 북아메리카 기후와 토양에 맞는 사과종이 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니는 고집스럽게 접붙이기를 기피하고 사과 자체의 자생력을 믿었다. 이런 사과의 자생력을 시험하고 재배하기 위해 다른 개척자들보다 한 발 앞서 미국 땅에서 이동하였으며 이동한 곳에서 재빠르게 사과 재배를 시작하고 장사를 했다. 이런 노력과 더불어 정부는 사람들을 여러 곳에 정착시키기 위해 사과와 배나무 심기를 권장했으며 숲을 개간하여 정착지로서 자리잡게 하는 데 큰 일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친 사과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19세기 이후에야 “감미로움”의 단맛 과일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단맛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은 그 식물 씨앗의 운반 역할을 했고 그 동물과 함께 공진화를 거듭한다. 열매의 색깔을 바꾸어 과즙 상태를 겉으로 나타냈고 씨를 포함하는 부분에 쓴 맛을 포함시켜 과육만을 먹게 하였다.
사과는 과일의 모습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번성한 포도를 타락한 카톨릭으로 연결시켰고 사과를 신성한 청교도의 과일로 보았다. 청교도의 나라였던 미국이었기에 조니는 기독교의 성인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마이클 폴란은 이 책에서 조니를 미국판 정숙한 “디오니소스”라고 보았다. 지은이는 디오니소스와 조니를 몇 가지 점에서 연관 짓는데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 포도주를 선물했듯이, 조니는 미국인들에게 사과를 선물했고 그가 숲을 거처로 삼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니체의 디오니소스에 대한 언급된 “소외되고 적대적이고 예속된 자연이 그의 아들인 인간과 화해를 청한다”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니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디오니소스의 이미지만큼 광적이지 않은 “온순한” 디오니소스라고 보는 것이 낫다. 조니는 구대륙의 씨앗을 미국 생태계에 소개하여 이주민들이 경험한 유럽의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채프먼의 노력 이후에 “사과 러시”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새롭고 좋은 품종을 만들어 내기 위한 미국 농민들의 노력에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이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사과 품종이 나타난다. 사과의 특성상 언제나 훌륭한 품종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이러한 열광은 곧 자신을 사과에 무의식적으로 투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농민들의 노력으로 좋은 품질(“때깔과 단맛”)을 가진 사과가 나타났으나 이렇게 만들어진 개량품에 집중하다 보면 사과에서 결국 야생의 능력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야생성을 꾸준히 접목시켜 지금의 사과의 힘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결국 야생품종은 인간에게 당장의 목적합리성에 부적합할지 몰라도 재생능력이라는 부분에서 본다면 앞으로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할 품종인 셈이다. 결국 사과는 우리에게 “야생성 없이는 문명도 없으며 지독히 쓴 맛 없이는 감미로움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튤립, 욕망-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양인들은 근대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도 산을 “지구 위의 사마귀”로, 숲을 “사탄이 출몰하는 장소”로 보았다. 영국 인류학자 잭 구디에 따르면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에 대한 애정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하며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아프리카는 경제적, 생태학적 이유 때문에 꽃보다 열매를 중시했다. 쉽게 말하자면 먹고 살기 힘든데 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꽃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아프리카인들은 예쁜 꽃을 감상하고 사랑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자연의 아름다움, 특히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투사하였다. 이렇게 인간과 꽃의 욕망이 어우러져 “정원”이 탄생한다. 꽃의 아름다움과 대칭성은 그 꽃이 건강함을 의미했고 벌은 이미 이러한 건강함 안에 과즙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고 아름다운 꽃의 유혹에 넘어가 꽃씨를 퍼뜨리는 주요 인자가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꽃의 이러한 아름다움과 대칭성을 자연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확대 해석하여 식물의 암술과 수술을 “미사여구의 도구” 등으로 활용하였다. 미사여구의 도구였던 식물로 그 명맥을 가장 잘 유지해온 것으로 장미, 난(蘭), 튤립 등이 있었는데 이 꽃들은 인간의 상황에 맞게 때로는 화사하게, 때로는 다소곳하게 그 모습을 변화시켰다. 꽃의 명맥 유지도 결국 인간의 욕망과 결부될 때, 오래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튤립은 그 유전적 영속성이 한 세대를 넘기기가 어렵기에 계속해서 품종개량이 필요했다. 품종개량으로 항시 다르지만 예쁜 모습을 보여줬던 튤립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또 인간 사회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더 인기몰이를 하였다. 튤립은 인간의 욕망과 어울려 야생상태가 아닌 인간욕망이라는 환경에서 최적의 적응을 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아주 잘 부합되며 외부에서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었던 아름다운 튤립이 들어오자 그 씨앗 주인은 씨앗을 도둑맞기에 이른다. 그 도둑맞은 씨앗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졌다. 유전적 영속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튤립에서 또 다른 튤립이 퍼지기 시작했다. 환경이 척박했던 네덜란드는 자신들에게 들어온 식물을 과장하고 그 가치도 높이 샀다. 이로 인해 정원 가꾸기는 네덜란드에서 매우 널리 유행했고 정원은 많은 사람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대상이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식물, 예를 들어 약재나 향수 등으로 쓰인 식물들만 그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는데 튤립은 실용적인 가치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그 수명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아름다움만을 가지고 튤립을 선택하는 가치로 사용하였다. 튤립의 이 “무익한 아름다움”은 당시의 인문주의와 아주 잘 맞아 떨어졌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튤립의 아름다움은 튤립의 안으로 향한 꽃잎, 줄기 하나에 꽃 한 송이를 가진 모습에서 드러났으며 이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격과 비슷했다. “절제된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과 사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바로 식물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한 셈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아폴론적인 절제된 모습을 한 튤립은 시장에서 큰 값을 받지는 못했다. 실제 고가로 거래된 튤립은 눈길을 확 끌 정도로 꽃잎이 벌어진 디오니소스적 튤립종이었고 이 튤립의 알뿌리는 크기도 작고 수량까지 적어 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 튤립의 아름다움이 튤립의 건강함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했고 “아름다운 꽃에게 반드시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들은 숙지해야 했다.
장미나 난 같은 식물과 다르게 튤립은 개별적 아름다움보다 만들어진 공산품처럼 통일된 모양의 아름다움이 핵심이었다. “튤립은 튤립답고 매우 플라토닉해 패션 모델처럼 우리의 시선을 확 스치고 지나가 버리곤 한다.” 여러 가지 색깔의 튤립이 있었지만 색상에 있어서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고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품종은 검은 튤립이었다. 이 검은 튤립을 두고 거액의 돈과 사람의 목숨이 걸리기까지 했다. 이런 경쟁은 튤립의 유전적 성질, 즉 비영속성 때문에 생겨났고 이 검은 튤립에 대한 광풍은 사람들의 맹목성과 “의미 없는 가치기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색깔의 튤립에 대한 열풍을 들여다 보면 그 당시 신분에 관계없이 동일한 옷을 입고 다녔던 엄격한 칼뱅주의자들에겐 강한 자극이었고 “부”에 대한 열망 이전에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일 원했던 것은 희귀 튤립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고 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네덜란드의 부르주아 계층이 되어 나타나기에 이른다.
꾸준한 열풍으로 일부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얻은 부르주아가 되었다. 1635년 이후 튤립은 선물거래의 대상이 되었고 그 장소는 선술집이었다. 선물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점차 거래시장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커졌으며 이와 동시에 튤립 가격은 급격하게 오르지 않게 되었다. 결국 튤립 열풍은 “소비나 향락의 열풍이 아니었고 튤립을 경제적 투기 수단으로 보았다.” 튤립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은 절제된 아폴론적 사회에 나타난 하나의 디오니소소적 열풍이었고 꽃들은 그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인간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여 공진화적 거래를 한 셈이었다. 또한 인간은 “자연의 이중적 특성인, 생성과 소멸”을 파악하고 삶의 의미에 대한 암시를 느꼈다.
이 책은 튤립 다음으로 마리화나와 감자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마리화나에 투영된 욕망은 “도취”였고 감자에 투영된 욕망은 “지배”였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의식의 체험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 의식의 변화는 마리화나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놀이기구나, 운동 등을 통해서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방법보다 마리화나는 그 의식변화의 지속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으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던(특히 1980년대 이후) 식물이었기에 인간은 마리화나에 더 빠져든다.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식물과 달리 마리화나는 1900년 이후 인간의 사회제도 변화 과정에서 그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많은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상 마리화나에 대한 나머지 내용과 감자에 대한 인간의 욕망 투영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현재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책은 절판된 상태이고 [[욕망하는 식물]]이란 제목으로 재출간되었으니 책을 못 구하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17세기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그의 [[통치론]]에서 “사람들에게 세계를 공유물로 주신 하느님은 또한 그들에게, 삶에 최대한 이득이 되고 편의에 봉사하도록 세계를 이용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라고 하였다. 이 언급에 근대의 핵심이 들어있다. 근대가 되며 이성은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득과 편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런 도구적 이성을 단순히 나쁜 의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사과의 달콤함과 튤립의 아름다움, 맛있는 감자를 만들어내는 유용함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
1 헨리 데이빗 소로우(지음), 강승영(옮김) [[월든]] (이레)
참고자료
- 존 로크(지음), 강정인 외(옮김) [[통치론]] (까치)
- 피터 그레이(지음) [[아일랜드 대기근]] (시공사)
- 강유원 강의 “역사철학의 이해” (http://armariuscast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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