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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세상, Part 1



김성우김성우 sinabrlo@hanmail.net

짧지 않은 뜨거운 현업 프로그래머 생활을 잠시 접고 학교로 돌아와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의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연구 이외에 '따뜻한 디지털 세상', 'IT 갤러리' 등의 월간지에 정보통신 관련 컬럼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으며, 근래 개발자와 이공계를 위한 글쓰기 책을 퇴고하고 있다.



2007년 7월 24일


어렵고 복잡하고 중요한 일

땡볕 내리쬐는 뜨끈한 6월의 어느 정오. 건설인부 서너 사람이 식당으로 가는 인도에서 보도 블록을 보수하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낡은 블록을 들어내고 모래를 다지고는 알록달록 색이 칠해진 새로운 시멘트 블록을 차례로 각단지게 맞춘다. 이 규칙이 있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는 어렵고 복잡하고 중요한 일은 모두 기계와 컴퓨터가 하게 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렇게 힘들고 반복되는 일만 남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중요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핵심인 것 중에 컴퓨터와 기계가 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어라, 그러고 보니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컴퓨터와 기계를 투입하기에 너무 비싼 반복적이고 힘든 일뿐이 아닌가. 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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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세상의 시작

처음에는 적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시작했다. 사람에게 시키기에는 무식하게 많은 양이라 지치지 않고 실수가 없는 기계에게 한 번 시켜보자는 거였다. 그러다가 판매, 재고, 회계 등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발생하는 기업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지면서, 규칙만 명확하면 지치지 않고 실수 없는 전자계산기계인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이제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다할 때까지 컴퓨터의 관리를 받을 만큼 컴퓨터가 보편적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전산등록이 되어 컴퓨터로부터 주민번호라는 관리번호를 부여 받는다. 교육도 컴퓨터로부터 받으며 노는 것도 주로 컴퓨터와 함께다. 성적도 컴퓨터에게 받으며 입학, 입사 여부도 컴퓨터가 결정한다. 월급도 컴퓨터가 주며 각종 결제도 잔고만 있다면 컴퓨터가 알아서 해준다. ‘김성우님께’ 하며 편지를 보내는 것도 이제는 다 자동 배송 시스템뿐이다.

컴퓨터와 기계는 불평 불만이 없다. 그리고 보증 기간 내에는 정전만 나지 않는다면 24시간 1년 내내 돌려도 실수 없이 일을 마친다. 게다가 돈을 빼돌린다거나 비방, 험담 등으로 뒤통수를 치거나 핵심 기술을 빼돌릴 리도 없다. 경영진들이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경영자들은 개발자들을 불러다가 회사의 일을 하나 둘 컴퓨터에 맡기기 시작한다.


사람을 컴퓨터로 대체하는 직업

컴퓨터는 사람의 말을 못 알아 듣기 때문에 누군가 사람의 말을 기계어로 번역해 주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개발자다. 경영자와 개발자는 근사한 약자로 포장된 SCM, CRM, ERP같은 각종 시스템을 운운하며, 도입될 시스템이 업무를 자동화해 업무를 편하게 해줄 거라며 모든 직원들의 업무를 뱉어내게 한다. 개발자들은 이 인터뷰 자료를 기초로 이들 업무의 규칙과 패턴을 추출해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컴퓨터에 이식한다. 이제 반나절 걸리던 문서 작성이 메뉴 클릭 두어 번으로 끝나게 되었고 결제도 상무님 방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아도 클릭 한 번이면 다른 업무를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세상 참 좋아졌네 하고 감탄하던 것도 잠시, 시스템이 서서히 안정화되어 가면서 동료들이 하나 둘 다른 부서로 발령 받기 시작한다. 하던 일을 컴퓨터가 하고 있으니 시간은 남고, 담배 피는 몇 분도 아까워 담배를 끊으라는 경영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공급망 관리(SCM)는 직원 구성을 창고지기와 운송직으로 바꾸어 버렸다. 고객관계 관리(CRM)는 신규 채용을 전부 여성으로, 전사자원 관리(ERP)는 직원들을 직접 고객을 대면해야 하는 인터페이스직(職)으로 보내고 있다.

대기업 직원들은 흔히 자신이 큰 기계의 부품 같다고 토로하곤 하는데, 이는 그 메커니즘을 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기업은 여러 시스템이 워낙 잘 갖추어져 있어 그들이 바라는 것이라고는 단지 맡은 자리를 사고 없이 잘 지켜주는 것뿐이다. 일당백이어야 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일이다.

개발자란 알고 보면 이같이 사람을 기계로 대체시키는 매우 잔인하고 차가운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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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인력 파업금지

최근에는 잠잠해졌지만, 금융권 인수합병이 한참이어서 시끄럽던 2004년만 해도 금융권 경영자들이 법제화하려고 기를 쓰던 것이 바로 ‘전산인력 파업금지’ 법안이다. 직원들이 아무리 파업을 해서 창구 문을 닫아버려도 전산망만 가동되면 영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을 공식화한 이 해프닝은 이미 금융권의 핵심적인 일은 기계가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근래 우리 사회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다. 이게 밥줄이 걸린 문제다 보니 사생결단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의 근간에도 기계와 컴퓨터가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쓰이는 곳은 분명히 기계와 컴퓨터의 사용도가 매우 높은 곳이다.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죄다 기계가 해버리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객과 얼굴을 맞대는 최전선 자리 밖에 남지 않아 버린 것이다. 재고 관리, 회계 관리, 직원 관리, 매장 관리, 홍보 관리, 배달 관리 등 모든 관리는 기계와 컴퓨터가 하기 때문에 남은 일이라고는 전산 시스템에 숫자를 입력하고 전산 시스템이 지시한대로 물건을 배달하거나 포장하고 독촉 전화를 하는 것뿐이다. 사실 비정규직들이 항의를 해야 할 곳은 정규직과 회사가 아니라 이들 전산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갈수록 대체가 불가능한 핵심적인 일은 기계가 하고 거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쉽게 대체 가능한 반복적이고 예외가 많지 않은 일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그 반대였는데 말이다. 세계적이고 규모가 클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게임의 룰: 적은 원가

여기에는 철저한 경제 원리가 적용된다. 경제 원리란 단순하다. 더 낮은 원가로 더 비싸게 파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로 가면 비싸게 팔기가 매우 힘들다. 주머니가 녹녹치 않은 사람이 늘 다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낮은 원가 실현 여부가 기업 생존과 가장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이 게임에서는 일등이 다 가져가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는 근간은 바로 저렴한 인건비를 통한 초저렴 원가경쟁력이다. 경쟁국의 10분의 1 수준 인건비다 보니 그 어떤 나라와 회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인건비가 그보다 10배 이상 비싼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세는 매해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1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실업률에 누구를 만나도 힘들다 한숨 쉬는 사람뿐인데, 통계는 이렇게 호황이니 도대체 이 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그 근간에도 기계와 컴퓨터가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독일의 루프트한자를 제치고 항공화물 운송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물류로 세계 1위라니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근간은 바로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의 수출에 있다. 모두 부피 대비 비싼 물건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용 효과가 크지 않은 기계와 컴퓨터가 주로 만들어내는 제품들이라는 것이다.

노동 집약적 산업의 경우 인건비 때문에 당해낼 재간이 없지만 기계와 컴퓨터가 주로 일하는 산업의 경우 사람의 몇 배에서 몇 백배 효율을 내기 때문에 원가 우위를 갖게 된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산업은 모두 노동 집약적 산업들이다.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 및 인건비가 3배는 비싼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을 수십 년째 유지하는 것도 이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이유로 경영자들은 사람을 기계와 컴퓨터로 바꾸지 않고서는 결국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자족을 하지 않는 이상 원가 경쟁력을 위해 대한민국도 생존을 위해 더 많은 기계와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쫓아내는 경영자나 대체 가능한 불안하고 힘든 일로 내몰리는 노동자나 누구나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노동자는 경영자와, 경영자는 다른 경영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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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하란 말이냐

이렇게 모든 분야에 컴퓨터와 기계가 투입되면서 갈수록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있다.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기계가 대신 일해주고 있기 때문에, 기호품을 제외하고는 품질을 감안하면 대량생산으로 인해 오히려 제품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는 식재료 수입과 함께 식당 종업원들이 차츰 교포들로 대체되면서 인건비가 떨어져 음식 가격은 향후 몇 년간 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청동기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기초 생존 활동인 의식주에 다시 전념하게 되어 버렸다. 모두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집에 살 생각만 한다. 술자리에 가봐도 그 이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존하려는 기계 유전자

타임지(誌)가 매해 선정하는 ‘올해의 100인’의 2007년 판. 대부분의 독자들은 팬들의 몰표때문에 가수 비가 타임지의 온라인 투표 1위를 하는 해프닝으로 잠시 떠들썩했던 것으로 기억하겠지만(결국 비는 올해의 100인 안에 들지 못했다) 역시 대단하다 할 만큼 쟁쟁한 인물들이 선정되었다. 아스날의 앙리,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유명한 크랙 벤터 외에 유명한 베스트셀러 저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동물생태학자 리처드 도킨스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가 힘들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생존활동이 모두 몸 속 유전자를 후대까지 잘 보존해 전달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원초적인 이유를 목적하며 살아갈 리 없다 반박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람은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배우자와 결합하려 하고 그 결과인 태아는 부모 양쪽에게서 받은 유전자 중에서 우성인 성질을 발현시킨다. 또한 내 유전자를 절반 가진 아이에게 경쟁력을 불어 넣기 위해 혼신을 다해 교육을 시키려는 것이 전세계 어디나 공통 정서인 것을 보면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적이다.

인간 자체의 삶의 목적이 자신이 지닌 유전자를 후대에까지 남기기 위함이라고 하면, 앞서 나열한 단편들로 보건대 기계의 목적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다. 기계도 틀림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많이 남기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어느 정도 큰 성공을 거둔 상태다. 무서운 것은 기계들이 지능까지 갖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실생활에서 네비게이션을 장착한 차량을 떠올릴 수 있다. 장거리 여행의 경우 실질적인 운전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 운전자는 지시 받은 대로 핸들을 꺾을 뿐이다. 말의 문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애매할 때도 방송국 아나운서실에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따옴표(“)를 붙여 구글에 물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어떠한 생산 시설 하나 없이 돈 놓고 돈 먹기로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을 벌어 들이는 헤지펀드들의 투자 결정도 이제 컴퓨터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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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세상 vs 인간세상

1조 7000억 원이라는 보통 대기업 총수들의 전재산만큼의 엄청난 돈을 2006년 한해 연봉으로 받은 짐 사이몬드가 대표이사로 있는 르네상스 테크롤러지는 현재 200여 명의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헤지펀드 운용사다. 이들 직원 중 70명 가량은 물리학, 수학, 천체물리학, 통계학 같은 이공계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이들이 하는 일은 순한 소주가 나오니 민속주가 안 팔리더라 하는 식으로 여러 사건들간의 연관관계를 찾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다. 어떤 정세나 징후가 보일 때 컴퓨터에 물어 보면 그 결과로 어떤 일이 이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고 잘될 분야라면 사들이고 안 될 분야라면 옵션에 투자한다. 이 컴퓨터를 이용한 투자법의 수익률이 엄청나, 르네상스의 펀드는 운용 수수료 5%에 인센티브로 수익의 거의 절반(44%)을 떼어갈 정도다. 엄청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홈페이지에는 30조 원 정도를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거래량으로 볼 때 운용하는 돈이 100조 원 정도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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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대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 하나의 고용 인력과 고용 효과가 몇 십만인 것에 비해, 단 200여 명으로 수조 원대의 이익을 내는 르네상스의 시스템은 기계 세상이란 어떤 곳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다른 헤지펀드들이 르네상스의 시스템을 이미 도입하였거나 도입하고 있으니 이런 속도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포츈지는 최근 세계 500대 기업을 통계 내어 발표하였는데, 그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10개 중 6개가 석유회사라는 것이었다. 석유는 기계가 생존하기 위해 먹어 치우는 기계 세상의 쌀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루 8500만 배럴의 석유를 마셔대는 피조물 기계와 컴퓨터가 인간에게서 중요한 일을 빼앗고 덜 가치 있는 일로 떠밀어 버리는 형상뿐이다.

주종관계를 뒤집으려는 이 같은 기계 유전자의 무한 확장에 인간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은 이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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