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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책꽂이

개발자의 인문학 나들이, 첫 번째 이야기



양유성양유성 yooseong@debian.org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7년 5월 15일


과학이나 공학은 몰가치적인 학문이지만 인문/사회학의 눈을 통해 잘못된 가치로 경도되지 않도록 5월부터 격월로 인문/사회관련 책을 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도 공학을 전공하였지만 최근에 발생하는 과학계의 연구와 관련한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냉철하게 보는 세상의 눈이 필요함을 느낀다. 과학을 공부하고 세상에 그 결과를 내놓고자 하는 정열은 어느 분야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열정에는 "성찰"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성찰"의 눈은 과학이나 공학과 관련한 책을 읽기보다는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내부에서 키워가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인문학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주로 소개할 예정이다.

윌리엄 L.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푸른역사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우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장을 펴 봐도 앞뒤 장의 흐름에 관계없이 책의 내용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물과 사건을 각 장의 주제로 삼았지만 각 장의 주제만 보고 그것만 설명하지 않고 그 시대 배경과 역사 흐름 속에서 그 인물이나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해 18세기까지 서양사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 긴 역사를 어떻게 500쪽 안에 모두 집어넣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정말 그 깊이가 어느 정도 될까 하는 의심을 할 수 있는데 막상 이 책을 들고 읽어보면 그러한 의심은 곧 사라진다. 각 시대별로 그 시대의 전문 역사가들이 힘을 모아 각 시대의 특성을 잘 살려 그 주제 설명을 도와줌과 동시에 거기에 흥미까지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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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역사를 전한 호메로스
이 책은 호메로스라는 인물에서 출발한다. 서양 문명의 두 가지 축인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 중 그리스 문화를 우리에게 가장 먼저 소개해준 인물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그런데 이 두 책이 알려주는 사건들은 호메로스가 태어나기 5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역사가라는 직업도 없었지만 그는 음유시인으로서 이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호메로스는 어떻게 자신이 살지도 않은 시대의 내용을 후세에 전달할 수 있었을까? 음유시인이면 사건들을 음악에 맞춰 구술로 알려주는 사람이었는데 다른 시인들과 달리 그가 읊조린 내용은 우리에게 전달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실제 그가 사형을 당했던 죄목은 ‘그리스 시민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 죄이고 거기에 새로운 신을 퍼뜨린 이이며 거기에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신’은 우리가 지금 쉽게 생각하는 ‘하느님’이나 ‘절대자’, ‘구원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관습과 자연법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보고자 했으며 이를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이뤄보고자 한 것이었다.

실정법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고 자연법이 세상을 이끌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에 반대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었고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셌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존재였다. 멜레토스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법정에 서게 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거듭 주장하며 배심원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당시 배심원은 유무죄를 판단할 뿐만 아니라 형량까지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사형을 받게 된다.

개인적인 원한과 배심원들의 미움을 받아 죽었다고 하지만 여기엔 시대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전염병으로 아테네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참주정을 이끌었던 인물 중 한 명이 악행으로 유명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인물, 카르미데스는 플라톤의 삼촌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이러한 배경까지 앞선 이유에 추가되어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시대의 분위기(정치적 보복)와 개인적 문제가 얽힌 불행한 사건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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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구원 실현을 사명으로 삼은 사도 바울
그리스 문화의 중심에 소크라테스가 서 있다면 그리스도교 문화에는 사도 바울이 서 있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가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고 성공적으로 퍼져나갔는지 알려준다. 여기서 바울은 헬레니즘화된 유대인이었으며 로마시민권을 누린 사람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육체는 악의 힘에 경도된 매체이며 “영혼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 점이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유대인을 구원하려고 온 구원자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구원자라고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 곧 이러한 생각은 소크라테스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 이상으로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된다. 바울은 단순히 그리스도교의 전파자라는 생각을 넘어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진정한 세계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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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으로 제국을 건설한 샤를 마뉴
이 책에서 알렉산더 대왕만큼이나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색슨, 롬바르트, 아바르, 사라센 족까지 들어간 종교전쟁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황제인 ‘샤를 마뉴(742~814)’였다.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강한 원동력은 바로 지적 호기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맞이하여 세상 이치를 배웠던 알렉산더 대왕보다 지적 호기심이 더욱 강했던 그는 여러 학자들을 모아 항상 공부를 했고 그 당시 흐름을 읽고 주도하였으며 제국의 미래까지 설정하는 강한 황제였다.

그는 재위 기간의 반 정도를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강한 추진력을 앞세워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토를 차지했으며 이러한 전쟁의 가장 큰 명목상 이유로 내세운 것은 이교도들을 모두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인류 전체 구원 사상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 바로 샤를 마뉴였던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지배와 정복의 정당화를 보장해주었다.

샤를 마뉴는 단순 개종에만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가 보여준 학구열과 관련해 사람들의 문맹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이 결과 보통 정복자에게 느껴지는 ‘힘의 군주’의 모습보다 ‘공부하는 군주’의 모습이 그를 대표하게 된다. 항상 노력하고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통해 제국은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지적 노력의 결과로 지금의 ‘로마체’라고 알려진 서체가 이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까지 그 영향을 받고 있으니 그의 학구적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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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한 전환점에 선 윌리엄 왕
이제는 눈을 조금 돌려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보자. 영국인들이나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1066년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해다. 삼국지의 조조에 버금가는 허허실실 전법으로 노르망디의 공작인 윌리엄 왕이 잉글랜드를 그의 손에 넣은 해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참회왕 에드워드’에게서 받을 줄 알았던 그는 해럴드라는 에드워드 왕의 처남과 왕위 싸움을 하게 된다. 먼저 해럴드가 왕위를 가지긴 했지만 윌리엄 왕은 자신의 자리를 어처구니없이 뺏겼다는 생각에 흥분하지 않고 계획을 세운다.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가 지배의 정당성을 보증해주었기 때문에 윌리엄은 로마 교황의 승인을 얻어내어 일종의 십자군 원정의 성격을 가지고 그 당시 종교적으로 혼란했던 잉글랜드로 가게 된다. 종교적 명분까지 생겼으니 잉글랜드에 있었던 귀족들까지 가세하며 많은 군대를 모았다.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로 가기 위해 해상전투와 지상전투를 철저하게 준비했고 제갈량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동남풍을 기다렸듯이 윌리엄도 순풍의 남풍을 기다렸다. 하지만 순풍은 쉽게 불어주지 않았고 무리한 공격으로 해럴드의 군대에 비참하게 당한다. 하지만 윌리엄은 재정비를 했고 결국 9월초 기다리던 순풍을 타고 잉글랜드 해안에 상륙한다. 해럴드도 약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은 밀고 밀리는 싸움을 계속하였다. 윌리엄은 이런 식으로 전쟁을 하다가는 그다지 승산이 없다고 생각 ‘위장 후퇴 전술’을 이용하게 된다. 패하는 척 달아나다가 기병이 훨씬 강한 윌리엄의 군대가 넓은 들판에 이르자 이전까지 산에 의지해 보병이 강세를 보였던 해럴드의 군대를 단숨에 짓밟는다. 이 전투 중에 해럴드는 죽고 윌리엄은 잉글랜드 왕이 된다. 만일 해럴드가 이 전투에서 이겼다면 우리는 지금 아마 ‘영어’를 쓰지 않고 색슨어를 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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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과 돈키호테
이 책에서 다루어온 사실들을 보면 많은 경우 세계사를 바꾼 큰 줄기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 “전쟁이 바로 문제의 핵심”인 셈이다. 이런 줄기에 빠질 수 없는 사건이 나온다. 바로 ‘레판토 해전’이다. 그리스도교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싸움이었는데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투르크인들의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지역을 계속 잠식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자 위협으로 느낀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교황의 영향 아래 모두 뭉쳤고 돈 후안이라는 당시 무적함대를 자랑했던 에스파냐의 장군이 전쟁을 지휘하며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역사에 남을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한다.

그런데 역사는 항상 승리자가 옳고 패배자는 그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 이 책의 단점이긴 하나 서양사이기 때문에 이 점은 감안하고 읽는 게 좋겠다. 이 레판토 해전은 엄청난 물량과 인명 손실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중요한 유럽의 문화를 낳았다. ‘바로크’가 바로 그 문화인데 이 문화는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이 무슬림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원동력이 되어 ‘예술과 건축’ 등에 큰 활력이 되었고 화려한 바로크 시대가 열린다.

이런 분위기는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그 절정에 이르고 30년 전쟁으로 그늘진 유럽의 역사를 단순한 화려함과 쾌락이 아닌 “양심의 가책을 수반하는 수척한 관능성”이 주를 이루게 된다. 철학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대두하고 30년 전쟁으로 종교가 아닌 국가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외화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이 외화가 바로 바로크 문화가 된다. 근대가 되면서 그 전까지 인간을 둘러싼 외부 세계의 기준들이 모두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소외적 절망을 느끼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돈키호테’다. 돈키호테의 작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전쟁에 직접 참가하여 투르크인들과 싸움을 한 사람이었고 이 승리를 직접 전장에서 맛본 사람이었다. 그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기사도를 보여주었고 거기에 자신의 모습까지 투영하여 넣었다.

보통 우리는 돈키호테가 한편으로 된 소설이라 생각하지만 속편까지 있는 소설이다. 재미있는 이유로 세르반테스는 속편을 쓰게 됐지만 그는 1편과 2편을 통해 그가 살았던 에스파냐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고자 하였다. 세르반테스가 참전했던 레판토 해전 승리의 중심에는 에스파냐가 있었고 레판토 해전 승리로 그는 열정의 시대를 한동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도 잠시, 에스파냐는 무적함대의 위용을 영국에 내주면서 매우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염병과 왕의 죽음은 에스파냐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이 세르반테스와 당시 에스파냐인들에겐 좌절의 시대로 보였고 이 좌절의 시기에 돈키호테는 세상에 나오게 된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 승리의 주역이었지만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한다. 세르반테스는 “사회가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한다”고 여기게 되었고 이 모습을 미친 기사 ‘돈키호테’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회 배경이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 '돈키호테'를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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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에서 무관할 수 있는가
여기에 쓴 내용 이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서양 역사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전쟁과 그 전쟁의 여파가 어떻게 개인의 삶까지 파고들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한 세기를 넘어서까지 이런 전쟁의 영향이 꾸준히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을 보면서 한국전쟁이 끝난 지금 전후 세대라고 하여 전쟁과 무관한 듯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한국전쟁의 영향에서 자유로운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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