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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해 기술로 기여하기”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써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곽중선 님입니다.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牛步行’하는 곽중선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곽중선 | 이븐모어 IT책임연구원


 
  곽중선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직업반 과정 중 컴퓨터반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직업반을 선택한 것인데 주변 권유로 대입 시험을 봤고 운 좋게 합격해 자연스럽게 대학에서도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후 어떤 재미를 느끼셨나요.
학습을 할 때 동기 부여라는 것이 뭔가 보상을 얻는 것이라고 할 때 제가 시간을 들여 뭔가를 하면 그에 대한 결과가 화면에 정확히 즉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중에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쉬운 문제를 배우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이죠. 점점 깊이 공부할수록 답을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군요. (웃음) 사실 처음 배울 때는 프로그래밍과 게임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고수가 되기 힘들듯이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장점은 시험을 위한 학교 공부는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데 반해 프로그래밍은 컴퓨터만을 상대로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주로 고독하게 독학을 해오셨는데 개인 스타일이었나요, 아니면 당시 주변 여건 때문이었나요.
둘 다입니다. 첫 번째 성격 탓도 있고요. 주변 여건에 대해 말씀 드리면… 전공 동아리에 들어가자마자 반 년도 못 되어 동아리가 해체되어 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일로 오기 같은 게 좀 생겨 동아리를 재건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선배가 없었고 혼자 공부를 해야 했고 그게 체질이 됐습니다. 당시 학교 분위기도 고시 공부를 빼면 전공 공부 모임이 활발하지 않았고요. 공부 모임이 활성화되려면 역사가 필요합니다. 선배들이 수년간 만들어온 학습 자료가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해지죠. 그뿐만 아니라 토론 같은 방식을 통해 공부하는 방법과 태도를 가르치고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배우면 지식을 체계적으로 빨리 익히고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봅니다.

독학의 장점이 있다면…
혼자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건 맞습니다. 같은 노력을 했을 때 뒤쳐지는 부분도 있고요. 다만 혼자서 공부하기 때문에 되새김질을 많이 합니다. 어떤 기술을 공부할 때 그 기술이 제 머리 속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질 때까지 몇 년이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설명할 때 유리한 편입니다. 혼자 공부하는 사람의 어려움이나 실수를 많이 아니까요.

10여 년간 자체적인 프레임워크를 혼자서 개발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로 개발을 시작하셨나요.
SI와 솔루션 개발을 둘 다 해봤는데 개발 업무를 하다 보면 단순 반복 노동판(?)이 되어 버리는 걸 자주 겪었습니다. 물론 트렌드가 있고 시간에 따라 변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반복되는 업무는 거의 개선되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제 자신도 힘들고, 회사는 돈을 벌지 못하는, 결국은 생산성을 내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제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다 프레임워크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당시 외산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는 회사도 많았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한국 상황에 맞는 프레임워크를 다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진 기술에 좋은 면이 있지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현장에서 괴로움을 겪기 십상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부한 것을 되새김질하는 것의 연장선에 있던 셈인가요.
예. 단순히 가져다 쓰는 사용자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 해체, 재조립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보통 유행에만 민감하기 쉬운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을 잘 포장해 주는 유행도 필요합니다만 유행에서 좀 벗어나 이미 성공한 기술에서 교훈을 찾으려 합니다. 푸시 서비스가 등장해 촉망을 받다가 사라졌지만 현재 RSS 피드나 위젯 등의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내용은 같고 껍데기만 바뀐 겁니다. 5~10년 후에도 살아남으려면 잘 변하지 않는 엔진에 해당하는 기술에도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개발자 취향에 따라 최신 기술 응용에 관심이 많다면 추세를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이 유행 기술 하나면 성공한다’ 같은 생각이죠.

그 동안 개발자 생활을 돌아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독학 기간이 길었다는 점입니다. 졸업 후 4~5년이면 충분했을 텐데요. 좀 비효율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앞서 생산성에 대해 말씀 드렸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을 빠트렸습니다. 바로 협력인데요. 1+1이 3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부분을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들의 활동은 전보다 위축되어 버린 듯 보여 안타깝습니다. 해외에서는 개발자들이 개발 관련 지식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가 좀 더 활성화돼야 지식이나 아이디어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블로그 보급으로 개인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개발자들이 많지만 그보다 더 상승 효과가 나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메일링 리스트나 뉴스그룹 등 다양한 소통 수단으로 의견 교환이 활발한데 국내에서는 그러지 못해 좀 아쉽습니다. 또 몇 년 간 오픈 소스가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그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좀 더 필요하겠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첫 직장에서 객체형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면서 비교적 일찍 객체 지향 개념을 공부했던 것이 첫 번째로 기억에 남습니다. 좋은 기회를 만났을 때 잘 잡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더 보람을 느끼는 일인데 5년 넘게 공공기관 그룹웨어를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단일 시스템에서 수만 명의 사용자가 동시 접속해 사용하는 시스템이었죠. 매일 아침 수만 명의 사용자가 제가 개발한 시스템에 접속해 업무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그 때가 제 삶에 대해 자신감을 얻은 때입니다. 제가 세상에 기여를 하고 있더란 거죠. 그 일을 하면서 직장인의 일을 편리하게 해주고 시간을 줄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개발자들이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 도구는 잘 만들지 못한다는 글을 쓰셨는데 평소 개발하시면서 얼마나 자주 그러한 도구를 만드시나요.
일상적으로 만들어 씁니다. 주로 라이브러리들인데 회사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 공개하지 못하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그 중에는 1회용으로 쓰고 마는 자잘한 것들도 있지만 그런 습관을 들이다 보면 아무래도 일할 때 많이 편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성이 올라가며 야근도 줄고 회사에서 성과로 나오기도 하고요. 그와 같은 수련이 없이 갑자기 실력을 높이기는 어렵습니다. 최신 언어와 개발 도구를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탄탄한 바탕이 닦여 있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이해하려면 책만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직접 써봐야 하고 반복 학습해야 합니다. 최고 수준에 오른 운동 선수들이 매일 반복 연습을 하는 이유와 별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오셨고 학교 출강도 하시고 블로그에 글도 많이 쓰셨는데 고갈되는 느낌이 들 때는 없었나요.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쓰다가 한동안 못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걸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쉬는 것이 좋은 방법 같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짧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많이 적어두려고 합니다. 요즘은 미투데이에 아이디어를 적어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40대 개발자’가 된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30대이고 40대가 되는 것이 조금은 두렵습니다. (웃음) 한국에서는 IT 개발자의 정년이 35세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데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개발자들 블로그를 보면 경력이 많이 연장되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외산 솔루션을 도입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대표적인 IT 비즈니스였죠. 그런데 이제는 생태계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습니다. 포털들이 대형 업체로 성장했고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종류와 분야도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시장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SI 분야만 놓고 35세 정년이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런 회사들에서는 팀장급 개발자들을 필요로 할 것이고요. 40대라고 은퇴해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30대인 개발자들이 앞으로 그와 같은 역할 모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커뮤니티가 다시 활성화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PC 통신 시절 동호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분들이 벤처 1세대가 되었는데요. 그와 비슷하게 다시 커뮤니티를 통해 ‘40대 개발자’라는 역할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IT 분야의 기획자들을 보면 블로그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개발자들도 기술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게 좋겠고요.

사회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개발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몇몇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는 이른바 ‘아저씨’ 개발자들만 남은 곳이 있습니다. 물론 개발자들도 장수할 수 있다는 희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분야에 젊은 개발자가 적다는 건 현재 일하는 개발자들이 은퇴한 후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키우는 데 전투기 조종사를 키우는 것만큼 돈이 들어갈 수도 있음을 뜻합니다. 프로그래밍이 더 쉬워진다고는 하지만 말씀대로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어떤 면에서는 개발자가 더 고급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40대를 위해 준비하시는 것이 있나요.
엄밀히 말하면 저는 미래를 계획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블로그에 ‘40대를 위한 계획’이란 카테고리를 만들고 글을 쓰고 있는데요. 하루하루가 쌓여 내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40대 준비를 앞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하는 일이 내일을 위한 준비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IT 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내일을 예측하며 살기보다는 오늘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셨는데 자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준비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주력으로 한 분야가 그룹웨어와 문서 관리 시스템이었는데 그런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느낀 것은 IT 기술 덕에 일상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만 자신의 기록은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하드 디스크의 연한이 3년인데 이 분야에서 10년 넘게 오래 일한 분들이 많습니다. 1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만들었겠죠. 인생의 추억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잘 보관하는 게 쉽지 않은 역설이 있습니다. 자신의 미니 홈피나 블로그가 싹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 IT 회사에서 그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한국 문화에 맞게 개인 기록을 보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오픈 소스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제 개인 학습에도 이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발자가 만들어내는 ‘멋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라고 보시나요.
일반인들이 보기에 소프트웨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기술에 근거해 만들어진 IT 기술이 사라진다면 지금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개발자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 공부를 하는 데도 소프트웨어 기술이 없다면 더 많은 비용이 들 겁니다. 필사를 하던 옛날까지 거슬러 갈 필요 없이 모뎀 시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시면서 희망을 지켜내는 힘은 무엇인가요.
점점 나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성장해 왔고 실력 있는 분들과 일하거나 블로그를 통해 교류하고 있고요. 또 예전보다 공부할 자료를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개발 환경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물론 개발하면서 지금도 고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여전히 하겠지만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곽중선 소개] 공공기관용 전자결재 시스템을 개발했고 현재 이븐모어에서 일한다. ‘써니의 一生牛步行’이라는 블로그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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