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온라인에서 ‘험블(humble)’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정지웅 님입니다. 한 겸손한 프로그래머가 꿈꾸는 웹의 이상과 작은 실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지웅 | NC소프트 오픈마루 스튜디오
프로그래밍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시작했는데 잘한 것은 아니었고 제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건 입대할 즈음입니다. 사실 학부 전공도 전산이었는데 관심이 크지 않다가 당시에 노스모크라는 위키와 르네상스 클럽, okjsp를 알게 됐고 거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개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웹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신 것도 당시에 받았던 영향 때문이겠군요. 예. 전 직장과 현재 일하는 곳 모두 인터넷 분야 일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 입사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었나요. 그 이전까지는 제가 잘 몰랐던 탓일 텐데 프로그래밍이 뭐랄까 단순한 작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앞서 말씀 드린 커뮤니티를 통해 재미있고 행복한 프로그래밍에 대해 들었고 위키란 네트워크를 통해 그런 내용이 퍼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전산 분야에 온 것이 잘못 온 것이 아니고 이 일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입대 즈음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셨다면 약간 뒤늦게 출발한 셈인데… 상대적으로 좀 만학(晩學)이다 보니 뭐든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도 부족함을 느끼고요. 공부할 것이 많았지만 노스모크나 르네상스 클럽을 통해 배운 공부법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에서 배운 공부법을 따라 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많이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필명을 얻은 계기가 된 블로그는 어떤 계기로 쓰기 시작하셨나요. 제가 공부하는 내용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한 프로그래머’ 블로그를 햇수로 3년을 쓰셨는데 그 동안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스스로에게도 공부가 됐습니다. 제 블로그를 읽고 도움을 받은 분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가장 많이 도움을 받은 건 제 자신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제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더디게 쓰는 편이라 초고를 쓰고 완성하기까지 2~3주 걸리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료를 더 찾아 공부하고 다른 분들의 조언도 듣고 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공부였습니다.
한편으로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변화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현실적 장벽이 있어서 아무리 좋은 목소리를 내도 실현되지 않고 공허해질 수 있다는 회의적인 의견을 종종 들으면서 한국의 웹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고 좀 아쉬웠습니다.
말씀대로 현재 한국의 상황은 변화의 조짐과 낡은 모습이 한자리에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처한 상황과 한국의 웹 현실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회와 장벽이 동시에 있는 것이죠. 현재 있는 기회를 많이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새 블로그로 옮기셨죠. 이번 블로그에서 목표로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웹은 앞으로 사회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전에는 기술이 진보하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기술 이외의 것을 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변화가 가능할 것 같고 그런 현상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쓰신 블로그를 보면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편인가요. 전에는 팀 버너스리 같은 비저너리(visionary)를 동경했는데 글을 쓰면서 좀 바뀌었습니다. 한국이라는 상황에서는 비전 제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이제는 새 블로그와 함께 조금씩 실천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실천인가요. 지난 7월 열린 시맨틱 웹 세미나에서 함께 발표를 했던 분들과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를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실험인데요. 완성되는 대로 공개하려 합니다. 취미나 개인적인 관심으로 이 분야를 공부하거나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개발자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혼자서 하는 것보다 공개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평소에 구조화된 데이터 웹에 관심이 많으시죠. 사용자가 웹에 있는 데이터를 스스로 쉽게 구조화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기술이 필요하리라 보는데 이와 관련해 주목하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웹에 있는 데이터를 전부 한번에 구조적으로 바꿀 수는 없고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과정에는 사용자의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런 측면에서는 태깅이 단순하면서도 유용한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태깅은 사용자가 자신만의 맥락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물론 그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 과제이긴 하지만 의미 있고 구조화된 웹으로 가는 데 주목할 만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또 XHTML이나 마이크로포맷 등도 구조적인 데이터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키텍처적인 측면에서는 REST가 중요하리라 보는데 REST가 구조적인 데이터들을 투명하게 이어주고 그렇게 연결되어야 의미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이런 기술들을 이용해 구조화된 데이터를 유통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미약하지만 의미 있는 출발 같습니다.
구조화된 웹으로 가는 데 있어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한국의 경우에는 자연어 처리 부분입니다. 아무리 구조화된 웹을 만들려 해도 자연어 처리에서 부족한 부분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연어 처리라는 것이 투자 비용 대비 효율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겠죠. 또 좋은 정보가 있어도 해당 서비스 밖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워 앞서 말씀 드린 의미 있는 연결을 이뤄내기가 어렵고요. 웹이 구조화되고 그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지금보다는 더 개방적이 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 웹은 정보를 위한 공공의 인프라라기보다는 사업 아이템의 성격이 강한 셈이군요. 한국에서는 웹과 관련된 산업이 특정한 방향으로 주로 발전해서 공공적 측면이 덜 드러나는 편인데 그 대안으로 작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좀 더 많이 나와 꾸준히 의미 있는 시도를 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어찌 됐든 변화를 위한 조건이 하나씩 갖춰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변화를 이끌어낼 마지막 방아쇠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개인적으로는 모바일 웹이라 생각합니다. 잘 갖춰진 한국의 모바일 인프라 위에서 기존 웹에 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항상 지나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 특성상 사용자의 콘텐츠 제작이나 참여가 더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좀 더 개인화되고 특정 서비스 제공자에 종속되지 않는 콘텐츠 이용과 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노력을 게을리 하면 기존 웹과 똑같은 현상이 생기겠지만요.
앞으로 웹이 필연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 보시나요. 현대 사회를 디스토피아라고 하지만 개인의 다양성이 좀 더 존중 받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웹의 분산적 성격이 그에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하고요. 웹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단기적인 이익만이 아니라 더 좋은 웹이 이끌어낼 더 좋은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웹을 두고 그런 즐거운 몽상을 꿀 수 있는 건 결국 메멕스에서 웹까지 이어진 원대한 이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메멕스의 이상이 3분의 1도 펼쳐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메멕스 같은 고전이나 비전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배경에서 무엇을 고민했고 무슨 이상을 제시했는지 계속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전에 건강이 나빠진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드라마를 보면서 줄넘기를 합니다. 3000개 정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그 동안 고민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실제로 사용자들에게 변화나 도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서비스를 회사에서나 여가 시간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 보고 그 과정들을 글로도 소개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한국의 웹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많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시도들이 꾸준히 나오는 걸 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한국은 가능성과 열악함이 공존하는 환경입니다. 작은 시도 하나하나가 모여야만 척박한 웹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합니다.
[정지웅 소개] 온라인에서는 '험블'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현재 NC소프트 오픈마루 스튜디오에서 '더 즐거운 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