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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쌓은 지식을 베풀어야 할 때”



그동안 개발자 인터뷰에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면서 MS 익스체인지 MVP로 활동하다 안정된 삶을 잠시 뒤로 하고 현재 중국 연변 과기대에서 현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구병국 님입니다.

구병국 | 연변 과기대 IT 교육원 교수


 
  김승범 몇 년도에 교사로 발령 받으셨나요.
1995년입니다.

인터넷 보급이 시작되려던 시기였군요.
예. 당시 학교 컴퓨터들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고 독립형(stand-alone)으로 쓰였는데 1996년부터 정부 사업으로 학내망 구축이 시작되면서 네트워크 장비들이 학교에 들어왔고 그 때부터 교내에서 전산 관련 업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전산화의 원년 멤버이신 셈인데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학교에 처음으로 솔라리스 서버나 윈도우 NT 등 학내망 서버가 들어왔을 때 충격적이었습니다. 인증을 해야 쓸 수 있는 컴퓨터라니 놀라웠습니다.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본 거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룰 수 있게 공부를 해야 한다더군요. 그래서 그 때부터 네트워크와 C/S 환경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강의나 자료 등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고 자격증도 많이 땄습니다. 그러다 근무지인 부산에서는 공부에 한계가 있어 인천으로 전근을 갔습니다. 인천에서 지금 연변 과기대에서 함께 일하는 백승훈 교수님을 만났고 공부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면서 IT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인터넷 보급 이후로 학생들에게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2002년 무렵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세대가 나타나면서 그 이전까지 닫힌 사회였던 학교가 열린 사회로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학교에는 그런 마인드가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열릴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그걸 연 사람들이 학생들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한메일이나 다모임, 메신저를 주요 소통 수단으로 활용했는데(요즘은 싸이월드를 많이 쓰죠) 다모임에 가서 학생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봤던 기억이 납니다.

교사로서 그런 변화들을 보시면서 어떠셨나요.
교사와 학생 모두 갈등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로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 버린 어려움이었죠. 좀 더 열린 사회로 가는 과정인데 한국에서는 그걸 대처하는 능력이나 방법 등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성장기에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 몸이 견디지 못해 얼굴에 여드름이 나듯이 변화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변화가 갑자기 와버린 것입니다. 서로 조화롭게 단계적으로 변화를 거치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졌던 것 같습니다.

MS 익스체인지 MVP로 활동 중이신데 메시징 시스템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대학 시절 1988년에 교육망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에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죠. 정보 공유 수단으로서 메시징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게 됐고 그 이후 MS 익스체인지 MVP가 됐고 익스체인지 사용자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메시징 시스템 초창기부터 최근 익스체인지 서버까지의 역사에서 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인터뷰 기사에서 이메일을 ‘효과적인 정보 공유 수단’으로 평가하신 걸 봤습니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현재 이메일이나 메시징 시스템에서 주의해 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이메일은 비동기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동기성 못지않게 동기성도 중요하죠. 인스턴스 메시징이나 현재 상태 정보 등이 중요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죠. 그에 따라 이메일이나 메시징 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징 시스템은 여전히 기업 내 의사 소통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시징 시스템 자체가 예전에는 텍스트 기반 정보만을 주고 받았다면 이제는 정보가 오가는 공간 안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통합 통신 환경으로 점차 발전해 가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메시징 시스템이 발전하는 것에 비해 사용자들은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기능이 복잡하다는 점이 한 원인일 겁니다. 2000년에 MS 익스체인지 서버가 출시될 때 ‘any time, anywhere, any device’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실제 사용해 보니 불편한 점들도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any device’가 되려면 넘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상당히 많아 통합 메시징 시스템이란 이상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화적 차이나 습관 문제도 크구요. 그런 면에서 보면 메시징 시스템이 일반인들에게 썩 편리한 시스템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ERP 시스템을 도입해도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결국 사용자들이 익숙하게 잘 사용할 수 있는 사용 패턴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리라 봅니다.

연변 과기대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대학에서 식품 공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IT 쪽에서 금세 유명해졌습니다. 많은 지식을 얻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것이 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닐 텐데’ 하는 것이었죠. 이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2004년에 정부 봉사 활동으로 스리랑카에서 한 달 간 IT 강의를 했습니다. 제 지식을 외국에 나가 쓸 수 있음을 알았는데 아무래도 언어 문제가 있었습니다. 돌아온 후 국내에서 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연변 과기대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연변행’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국 내에서 조선족 같은 소수민족은 상대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입니다.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중국 주류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IT 교육원을 지으려 한다는 구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제가 교수 요원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일하고 IT 강의도 했기 때문에 방학 기간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정도였죠. 그런데 막상 현지에 가 보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할 상황이어서 풀타임으로 교육원 설립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백승훈 교수님을 비롯해 함께 일할 사람들을 모아 중국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IT 교육원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중국에 들어가기 전 한 재중 한국 IT 업체와 교육 협약이 이뤄졌습니다. 연변 과기대 IT 교육원을 마친 학생들이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교육비를 지원하고 채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07년 첫 번째 기수가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재중 한국 IT 업체들의 현지 인력 위탁 교육 과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선족 학생들에 대한 인상은 어떠셨나요.
지식 습득 욕구가 스펀지 같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센 편이라 자존심이 깎이면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업에서는 개발자의 자존심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업무 능력을 요구하죠. 그래서 그런 면을 알려주고 한국 기업의 문화 같은 것을 가르치는데 빠르게 배웁니다. 연변에는 ‘사과배’라는 과일이 나는데 사과와 배의 모양과 맛이 섞인 것입니다. 조선족이 그와 같아요. 하지만 이런 점을 잘 가다듬으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75%의 인간이 아닌 150%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다리’ 구실을 잘 해내는 엔지니어로 키우려 합니다.

소외 계층을 위한 IT 관련 교육에 관심을 갖는 개발자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신가요.
예. 이제는 베풀 때가 됐다고 봅니다. 중국에 다시 들어가기 전까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다양한 개발자들에게 홍보할 계획입니다. 제가 이 일에 10이라는 노력을 쏟았다면 느끼는 기쁨은 그 대여섯 배입니다. 단지 눈으로 보이는 돈이 왔다 갔다 하지 않을 뿐이지 전혀 예기치 못한 굉장히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이 안정되면 될수록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집도 사고, 투자도 하고 연금도 넣고 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은 예측 불가능한 삶을 예측 가능하게 하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측 가능한 삶을 잠깐 내려놓고 예측 불가능한 길에 들어서고 나서 얻은 예기치 못한 기쁨이 그러한 안정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삶에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변 과기대에서는 언제까지 일하실 예정인가요.
3년 휴직을 신청했고 2010년 2월 말까지 일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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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과기대에서 경험하신 것 중에서 가장 큰 소득은 무엇인가요.
연변에서 얻은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깨진 마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겪은 갈등 때문이었는지 젊었을 때는 열기, 열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것이 사라지고 ‘그냥 흘러가는 거지’하며 지냈습니다. 연변에서는 선생과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잃어버렸던 ‘천직’으로서 보람을 되찾았고 교직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학생들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값진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런 사랑을 실천하려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전 세계에 중국인보다 더 많이 흩어져 있다고 하는 ‘디아스포라 한국인’들을 IT 기술을 통해 묶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식품 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식생활이 불규칙한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식품 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 불이익(?)을 받습니다.(웃음) 함부로 먹으면 안 되니까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맛있는 가공 식품은 몸에 좋지 않다’입니다. 개발자들은 늦게까지 일하다 보면 밖에서 대충 사먹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패스트푸드는 치명적입니다. 될 수 있으면 집에서 자연 식품을 먹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구병국 소개] 학부에서는 식품 공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선생님이면서, 대학원에서는 전산전공으로 Exchange 서버에 관한 논문을 쓰고 MS 익스체인지 사용자 그룹을 이끄는 시삽으로 활동했다. 현재 연변 과기대 IT 교육원에서 조선족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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