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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를 이어내는 미디어 되기”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과학도이자 타칭 ‘가내수공업형 코더’이면서 그 경험들을 종합해 현재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최승준 님입니다. 프로그래밍을 복잡한 기술 구현이 아닌 창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최승준 님의 작업과 그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집자 주: 연말 특집(?)으로 인터뷰 양식을 조금 바꿔보았습니다.

최승준 | 미디어 아티스트
erucipe@hanmail.net


 
  최승준 두 달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미디어 아트 쇼케이스’라는 행사에 참여했다. 미디어 아트(이하 미디어 아트)란 새로운 미디어 기술, 이를테면 컴퓨터 그래픽스, 인터넷, 로보틱스 등의 기술을 활용하는 창작을 말하는데(참고: http://en.wikipedia.org/wiki/Media_art), 물론 개발자가 예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프로세싱 같은 언어가 나타나면서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미디어 창작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쇼케이스에서도 그런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프로세싱에서 짧은 코드 몇 줄을 넣자 상당히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화면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의 결과물은 소프트웨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 시연을 한 사람은 물리학도였으며 유치원 선생님이기도 하면서 작가로도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결국 그 ‘작가’와 인터뷰를 시도해 보기로 하고 어렵사리 약속을 잡았다. 인터뷰는 ‘미디어 아트를 시작한 계기’라는 평이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최승준이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기까지는 여러 경험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스와 프로그래밍
이야기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승준은 초등학생 때 MSX, 애플 같은 컴퓨터와 거기에서 돌아가는 게임들, 재패니메이션을 접한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고교 시절 TV에서 컴퓨터 그래픽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컴퓨터 그래픽스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고 나우누리 그래픽 매니아 동호회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비록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했지만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그림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됐다.

컴퓨터 그래픽스와 더불어 미디어 아트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경험은 바로 프로그래밍. 컴퓨터 그래픽스 공부를 하다 보니 SIGGRAPH에 올라오는, 향상된 렌더링 기법을 다룬 논문들을 계속 보게 됐고 당시 나온 도구들에 불만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미대생 과제를 도와주면서 ‘미술적 감각’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기술 측면에서 그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던 중에 1995년 개봉된 픽사의 토이스토리를 제작하는 데 쓰인 렌더맨을 알게 된다.

렌더맨에서 셰이딩 언어로 자연물 같은 것을 묘사하는 걸 보고, ‘이거다’하는 느낌이 들어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고 OpenGL까지 공부하게 된다. 자연히 전공과 맞물려 물리 실험을 시뮬레이션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초전도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도중 거기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에 푹 빠져버린다.

최승준은 이후 프로그래밍을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언령(言靈)이나 환상 문학의 마법 주문, 진언(眞言, mantra), 성서 창세기의 ‘말씀’ 등은 말에 힘이 있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다양한 문화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예인데 컴퓨터 세계에서도 프로그래밍 언어가 컴퓨터라는 공간 속에서 어떤 현상을 눈앞에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최승준은 그것에 매료되어 버린다. 인간이 옛부터 꿈꾸던 창조와 관련된 무엇인가와 상당히 닮은 작업이었던 것이다.

경계를 넘나들다 어느새 작가가 되다
창조에 대한 영감은 다시 사람의 정신(또는 마음)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지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이어진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아이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다 2002년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시의 유아 교육 현장(주: ‘레지오 접근법 소개 글’과 ‘교육과 미디어 아트의 만남, Future of Learning’ 중 레지오 에밀리아 부분 참고)을 방문하고 감동을 받아 그와 같은 문화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 유치원에서 일을 시작한다.

얼마 후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삼성 HCI 팀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인터랙티브 환경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UI에 관련된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강의도 맡게 된다. SIGGRAPH 논문들과 MIT 미디어랩의 활동을 꾸준히 살펴보고 있었던 최승준은 프로세싱이라는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같은 분야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아트센터 나비에서 INP(Interactivity & Practice)라는 관련 그룹을 찾아내고 INP 1기에 참여한다. 공학자, 예술가, 인문학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실험적인 그룹인 INP에서 최승준은 나비의 전시회나 어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창작을 하게 된다. 어느새 작가가 된 것이다.

창작의 DNA, 프로세싱
스케치북처럼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프로세싱은 최승준에게 유용한 도구다. 일단 뭔가의 밑그림이라도 만들어야 되먹임이 일어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프로세싱은 그 진입 지점을 낮춘 도구라는 것. 보통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프로세싱으로 테스트한 후 플래시나 MS의 XNA 같은 좀더 완숙된 도구를 이용해 창작 작업을 한다. 특히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동안 아이디어 구상을 하면서 프로세싱을 유용하게 활용한다. 현재 약 300개 습작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습작들은 나중에 발췌해 창작 작업을 위한 DNA로 삼는다고 한다.

미시와 거시 사이를 오가기
최승준이 즐겨 하는 작업 방식은 미시와 거시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를 중첩하는 것이다(최승준은 이것을 트랜스 스코픽이라 부른다). 여러 개의 작은 사진을 각각 픽셀로 삼아 멀리서 보았을 때 또 다른 큰 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포토 모자이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메모리 제한 때문에 블록 크기 조정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시간 축에 따라 이미지를 중첩해 보았는데 이미지가 선명해지는 효과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주: 실제 작품 1, 2). 결국 현상을 이해하려 할 때 작게, 그리고 크게 보는 것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그 현상을 훨씬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미디어 아트에서는 그와 같은 작업을 과학, 예술, 인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할 수 있기에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기술과 미학의 균형
미디어 아트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기술에 집중하다가 미학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승준 역시 과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창작의 예술성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전공이 멍에가 됐고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해 자신은 비어 있는 상태이고 회피하지 않고 계속 배워나간다면 더 많은 것을 쌓아나가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최승준에게 물리학을 연구한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지금은 당시 배웠던 것을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사고 방식에 눈을 떴고 그 때 배웠던 원리들을 자신의 삶과 창작에서 재현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데모 씬의 실종
미디어 아트의 실험 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잠깐 하다 (인터뷰 전 최승준의 경고(?)대로) 하이퍼링크를 타듯 화제가 '데모 씬 실종에 대한 아쉬움'으로 옮겨갔다.

데모 씬이란 아타리 같은 초창기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던 사용자들이 게임을 크랙한 후 와레즈에 올리면서 그 안에 각종 영상이나 그래픽을 넣은 데서 비롯된 하위 문화다. 사용자들은 온갖 수학 원리를 동원해 작고 단순한 코드로 당시 컴퓨터의 제한된 성능 내에서 최대한 화려한 효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64KB 안에서 많은 것을 해냈던 것이다. 이 씬에서 자란 사용자들은 후에 보안, 게임, 영상, 음향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다. 데모 씬 문화는 특히 유럽에서 발전했는데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만큼 다양한 기법이 발전해 미디어 아트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현재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노래방과 데모씬과 개발자의 우울’이라는 글에서 지적됐듯이 창작의 욕구가 대부분 노래방이나 게임방에서 해소됐을 뿐이었다.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좀 더 다양한 창작 시도와 실험이 나오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는 것.

권위를 낮추고 자유롭게 시도하기
미디어 아트가 예술에 대한 장벽을 낮출 수 있을까? 예술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이든 권위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마치 그건 자신이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단’ 소리를 듣더라도 하위 문화가 다양해지고 정제되어 주류 문화에 편입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 최승준은 미디어 아트가 그런 면에서 예술에 대한 장벽을 낮출 수 있겠지만 그것 역시 전공이 되고 학위가 된다면 그러한 기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준은 최근에 온라인 학습 생태계 같은 대안교육 현장이나 Creative Commons Korea와도 함께 작업한다. 흔히 가볍게 생각하는 유아 교육에 대해서도 레지오 에밀리아 시 같은 교육 현장에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여 대안을 구상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디어 아트가 그것을 위한 좋은 매개가 되어 주고 있다고.

스스로 미디어 되기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면서 최승준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한 학습의 패턴들을 사회의 여러 분야, 다양한 층위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그 속에서 계속되는 배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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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개발, 예술 어느 한 분야에 ‘골수’라 할 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최승준은 다양한 분야를 잇는 일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미디어 아트 창작을 넘어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현실적으로 미디어 아트가 그저 신기하고 재미만 주는 작업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매개로 다양한 것을 합쳐 의미 있는 맥락을 만들고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가 되는 것’이 바로 최승준이 평생 하고 싶어 하는 작업이다.



[최승준 소개] 미디어 아트의 잠재능력이 다양한 학습의 층위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를 실천하고자 예술과 IT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협업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지식, 마음, 문화와 관계 맺고 이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창작 활동으로는 Creative Commons Korea와 함께 CC Real Mixter라는 협력 네트워크를 이루어내는 작업의 퍼실리테이터 역할과 폐막 공연으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P.Art.y에 초대되었으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ARCO Intermediae Minbak에 참여했다. Project I, 예술의 전당 Alice Museum, 세종문화회관 알록달록 빛깔 체험전 등 다수의 어린이의 참여를 통한 워크샵 및 전시를 해오고 있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d2Mix, Remix에서 발표를 하였고, 온라인 학습생태계와 같은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 인터뷰는 대학생 모니터 요원과 함께 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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